[동포의 창] 제천에 뿌리내린 고려인4세 "모국으로부터 처음 보호받는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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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산 거쳐 제천에 정착한 카자흐 출신 리 알렉산더 씨

산재·이산가족 등 시련에도 "영주권 취득해 고려인 식당 여는 게 꿈"

이미지 확대 카자흐스탄 출신 고려인 4세 리 알렉산더 씨

카자흐스탄 출신 고려인 4세 리 알렉산더 씨

(제천=연합뉴스) 박현수 기자 = 지난 11일 충북 제천시 재외동포지원센터에서 만난 카자흐스탄 출신 고려인 4세 리 알렉산더(52) 씨는 "제천에 완전히 뿌리내리고 싶다"며 환하게 웃었다. 2026. 1. 11. phyeonsoo@yna.co.kr

(제천=연합뉴스) 박현수 기자 = "언어도, 일도, 가족도 다시 시작해야 했지만, 이제는 제천이 제 삶의 중심이 됐습니다."

지난 11일 충북 제천시 재외동포지원센터에서 만난 카자흐스탄 출신 고려인 4세 리 알렉산더(52) 씨는 이제 한국을 '이주지'가 아닌 '정착지'로 부른다. 2016년 가족과 함께 모국 땅을 밟은 지 9년 만에 얻은 확신이다.

안산에서 공장과 건설 현장을 전전하던 그는 지난해 8월 제천으로 삶의 터전을 옮겼다. "안산은 동포가 많아 한국어를 쓸 기회가 적었고, 사회 적응에도 한계가 있었다"며 "반면 제천은 일상 자체가 한국어 학습의 장이고, 비자 특례가 적용되는 인구소멸지역이라는 점도 이주를 결심한 결정적 이유였다"고 설명했다.

제천시는 인구감소 대책으로 '고려인 등 재외동포 이주 정착 지원사업'을 펼치고 있다. 알렉산더 씨가 머무는 재외동포지원센터는 이주 고려인이 4개월 동안 무료로 거주하며 언어 교육을 비롯해 정착을 위한 각종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시설이다.

1975년 카자흐스탄에서 태어난 알렉산더 씨의 뿌리는 경남 진주다. 증조부가 진주에서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로 이주했고, 1937년 스탈린 체제의 강제 이주 정책으로 카자흐스탄에 정착했다.

할아버지는 러시아, 할머니는 우즈베키스탄 출신으로, 러시아와 우즈베키스탄 혈통이 섞인 가정에서 자란 그는 고려인 디아스포라의 복합적인 역사를 몸소 상징한다.

이미지 확대 리 알렉산더(왼쪽) 씨 아내(오른쪽)와 두 아들

리 알렉산더(왼쪽) 씨 아내(오른쪽)와 두 아들

[리 알렉산더 제공]

그는 키르기스 국립대학교에 진학했지만 가정 형편으로 2학년 때 중퇴했다. 이후 석유회사 자재관리 매니저, 보안 부서 운영팀, 자동차 관리 매니저 등 다양한 직업을 거쳤고, 한국 이주 직전에는 이탈리아 레스토랑에서 일하며 요리 경험도 쌓았다.

한국행을 결심한 계기는 자녀 교육이었다. 큰아들은 한국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자동차 부품 회사에 취업했고, 둘째 아들은 현재 고등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이다. 딸은 결혼 후 카자흐스탄에 남아 있다.

알렉산더 씨는 제천 재외동포지원센터를 통해 행정 절차와 언어 교육, 생활 상담 등 전방위적인 지원을 받으며 적응 속도도 빨라졌다. 그는 "처음으로 모국으로부터 보호받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전했다.

그러나 정착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다. 최근 건설 현장에서 용접 작업 중 낙상 사고로 발을 다쳐 산재 치료를 받고 있다. 월 150만 원 남짓한 산재 보상금으로는 가족 부양이 빠듯해 보상금을 포기하고라도 재취업을 준비 중이다.

아직 한국어가 서툰 아내는 일자리를 구하지 못했다. 안산에 남은 두 아들과는 떨어져 지내는 '이산 생활' 중이며, 4개월간의 센터 기숙사 거주 기한이 지나 주거 문제 해결도 시급한 과제다.

그럼에도 알렉산더 씨의 눈빛은 희망적이다. 수입은 줄었지만, 제천의 자연환경과 따뜻한 이웃 공동체가 주는 만족감이 훨씬 크기 때문이다. 그는 "처음 한국에 왔을 때는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수없이 했지만, 지금은 결코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단언했다.

이미지 확대 제천시 재외동포지원센터 전경

제천시 재외동포지원센터 전경

(제천=연합뉴스) 제천시 재외동포지원센터는 '고려인 동포와 상생 발전하는 제천'이라는 슬로건으로 고려인 동포들에게 행정 절차와 한국어 교육, 취업 알선, 생활 상담에 이르기까지 전방위적인 지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그의 당면 목표는 부부 합산 연 소득 5천만 원을 달성해 영주권(F-5)을 취득하는 것이다. 영주권을 얻으면 아내 역시 취업 제한이 없는 비자를 받을 수 있고, 제천에 온전한 '내 집'을 마련할 기반도 생기기 때문이다.

장기적으로는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 전통식을 접목한 '고려인 전문 식당'을 여는 것이 꿈이다.

알렉산더 씨는 "고려인 음식은 한국인들에게도 충분히 매력적일 것"이라며 "맛있는 음식을 매개로 지역사회와 문화를 나누며 제천에 완전히 뿌리내리고 싶다"며 환하게 웃었다.

phyeonsoo@yna.co.kr

제보는 카카오톡 okjebo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2026년01월12일 09시40분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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