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중 항일역사기념사업회 추모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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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촬영 한종구 기자]
(베이징=연합뉴스) 한종구 특파원 = 17일 오전 중국 수도 베이징 둥청구 둥창후퉁(東廠胡同) 28호 앞 골목.
허름한 담벼락 아래로 작은 상 하나가 놓였다.
북어포에 과일 몇 개와 소주 한 병. 제사상이라고 하기에는 소박했지만, 술잔을 든 교민들의 표정은 엄숙했다.
영하 10도 안팎의 매서운 추위 속에서도 말은 오가지 않았다.
술을 따르고 고개를 숙인 뒤 짧은 침묵이 흘렀다.
일제 강점기 대표적 민족시인이자 독립운동가 이육사(1904∼1944)의 순국 82주기를 맞아 베이징 교민들이 마련한 추모 자리다.
둥창후퉁 28호는 베이징의 명동으로 불리는 왕푸징(王府井)에서 약 1.5㎞ 떨어진 곳이다.
일제가 지하 감옥으로 사용했던 장소로, 이육사가 1944년 1월 16일 새벽 고문 끝에 숨졌을 가능성이 큰 곳으로 지목된다.
독립기념관이 운영하는 국외 독립운동사적지 홈페이지에도 이곳은 '이육사 순국지'로 표기돼 있다.
베이징에 거주하는 교민과 주재원들로 구성된 '재중 항일역사기념사업회'는 해마다 이맘때면 이 골목을 찾는다.
그러나 해가 갈수록 추모의 공간은 좁아지고 있다.
7∼8년 전만 해도 사합원(四合院) 형태의 주택 안에는 일제가 지하 감옥으로 사용한 공간과 오래된 쇠창살이 남아 있었다.
그러나 리모델링과 재건축이 이어지면서 내부 흔적은 대부분 사라졌고, 수년 전부터는 외부인의 출입도 제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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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촬영 한종구 기자]
참석자들은 담벼락을 등지고 간단한 제례와 묵념을 한 뒤 이육사의 대표시 '청포도'를 낭독하며 행사를 마무리했다.
한 교민은 "예전에는 건물 안에서 추모제를 진행했지만, 이제는 골목에서 술 한 잔 올리는 것조차 조심스러운 상황이 됐다"고 아쉬워했다.
홍성림 기념사업회장은 "독립기념관에 기록된 베이징 내 사적지 26곳 가운데 사적지임을 알리는 표지석이 설치된 곳은 한 곳도 없다"며 "역사의 현장이 기억 속에서 사라지지 않도록 매년 조용히 추모를 이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1904년 경북에서 태어난 이육사는 1925년 독립운동단체 의열단에 가입하며 항일투쟁의 길에 들어섰다. 본명은 원록이다.
1927년 장진홍 의사의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파 사건에 연루돼 대구형무소에 수감됐고, 당시 수인번호 '264'를 따 '육사'라는 호를 쓰게 됐다.
출옥 후 베이징대 사회학과에 입학한 그는 중국의 문학가이자 사상가 루쉰 등과 교류하며 독립운동을 이어갔다.
1933년 귀국해 시 '황혼'을 발표하며 문단에 나섰고, '청포도', '절정', '광야' 등 저항시로 민족의식을 일깨웠다.
그의 삶은 시인 이전에 투사였다.
생애 동안 17차례 투옥됐고, 1943년 가을 다시 체포돼 베이징으로 압송된 뒤 이듬해 1월 차디찬 감옥에서 생을 마감했다.
80여 년이 흐른 지금, 그가 마지막 숨을 거둔 것으로 추정되는 현장은 일상의 공간으로 바뀌고 있다.
그러나 매년 1월이면 북어포와 소주 한 병을 든 사람들이 다시 그 골목을 찾는다.
흔적은 사라지고 있지만, 기억은 아직 멈추지 않았다.
jkhan@yna.co.kr
제보는 카카오톡 okjebo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2026년01월17일 14시43분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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