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분투칼럼] 필요할 때만 찾던 아프리카서, 함께 설계하는 아프리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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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조 주한가나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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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조 주한가나대사

[최고조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편집자 주 = 연합뉴스 글로벌문화교류단이 국내 주요대학 아프리카 연구기관 등과 손잡고 '우분투 칼럼'을 게재합니다. 우분투 칼럼에는 인류 고향이자 '기회의 땅'인 아프리카를 오랜 기간 연구해온 여러 교수와 전문가가 참여합니다. 아프리카를 다양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분석하는 우분투 칼럼에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을 기대합니다. 우분투는 '당신이 있어 내가 있다'는 뜻의 아프리카 반투어로, 공동체 정신과 인간애를 나타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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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가나 지도

[제작 양진규]

최근 국제사회 주요 의제를 살펴보면 한 가지 공통점이 분명히 드러난다. 기후위기 대응, 에너지 전환, 글로벌 공급망 재편, 디지털 금융과 데이터 거버넌스 등 모든 문제의 교차점에 아프리카가 자리하고 있다. 한때 세계 질서의 주변부로 취급되던 대륙이 이제는 변화의 한 축으로 부상하고 있다. 인구 구조와 기술 환경, 자원과 시장, 그리고 지정학적 위치까지 고려하면 아프리카는 더 이상 선택적 관심의 대상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프리카를 바라보는 시선은 여전히 과거의 관성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경우가 많다. 변화의 속도와 방향에 비해, 관계를 맺는 방식은 상대적으로 더디게 바뀌고 있다. 이는 아프리카 내부의 문제가 아니라, 외부 세계가 아프리카를 대하는 태도의 문제이기도 하다.

이미지 확대 가나 중학교에서 친구들과 함께 어울리는 중학생 시절 최고조

가나 중학교에서 친구들과 함께 어울리는 중학생 시절 최고조

[최고조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아프리카가 가장 자주 주목받는 순간을 떠올려 보면 일정한 패턴이 있다. 국제대회 유치, 국제기구 선거, 주요 국제 행사 등에서 지지 확보가 필요할 때다. 그 시기만 되면 세계 각국의 대표단이 아프리카 여러 나라를 찾아 협조를 요청한다. 목적은 분명하고 일정은 촘촘하다. 성과는 숫자와 표로 평가된다. 이러한 만남은 짧고 집중적이지만, 일회성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일이 끝나면 관계는 다시 느슨해지고, 다음 필요가 생길 때까지 교류는 중단된다. 아프리카는 오랫동안 이렇게 '필요할 때만 찾아가는 대륙'으로 기억돼 왔다.

이러한 접근은 특정 국가만의 문제가 아니다. 국제사회 전반이 오랫동안 아프리카를 전략적 표의 집합, 혹은 자원과 시장의 공간으로 다뤄왔다. 냉전기에는 이념 경쟁의 무대였고, 탈냉전 이후는 개발원조 대상이었다. 최근에는 글로벌 사우스의 대표 주자로 다시 호출되고 있다. 시대마다 명분은 달라졌지만, 관계의 방식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여전히 단기 목표 중심, 이벤트 중심의 접근이 반복되고 있다.

그러나 아프리카는 이미 달라지고 있다. 평균 연령 19세라는 젊은 인구 구조는 사회 전반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빠른 도시화는 새로운 경제와 문화의 공간을 만들어내고 있다. 특히 모바일 기술을 기반으로 한 디지털 전환은 아프리카 사회의 작동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고 있다. 은행 계좌 없이도 모바일 결제로 금융에 접근하고, 행정 인프라가 충분하지 않은 환경에서도 디지털 플랫폼을 통해 공공서비스가 확장된다. 이러한 변화는 외부에서 설계된 모델이 아니라, 아프리카 내부의 필요와 현실 속에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지고 있다. 제도는 미완이지만, 상상력은 살아 있으며 자본은 부족하지만, 사람은 넘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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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하는 최고조 주한 가나대사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최고조 주한 가나대사가 2025년 12월 12일 서울 용산구 주한 가나 대사관저에서 연합뉴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러한 맥락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개념이 '우분투'(Ubuntu)다. 흔히 '당신이 있어 내가 있다'는 뜻으로 소개되는 이 개념은 단순한 인간애나 도덕적 미담에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사회가 위기를 견디는 방식이자, 공동체가 개인을 보호하는 실제 작동 원리다. 가족과 이웃, 지역 공동체가 개인의 삶에 깊이 관여하고 책임을 나누는 문화는 간혹 외부의 시선에서는 비효율적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제도가 충분히 작동하지 않는 환경에서는 이러한 관계망이 곧 사회적 안전망이 된다.

아프리카의 비공식 경제, 공동체 돌봄, 분쟁 이후의 회복력은 우분투적 사고 위에서 유지돼 왔다. 이는 단순히 '정이 많다'는 이야기와는 다르다. 신뢰가 먼저 형성되고, 관계가 유지되며, 그 위에 제도와 시장이 자리 잡는다. 개인보다 공동체를 우선하는 이 방식은 서구식 개인주의와는 다른 사회 운영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 가능성은 오늘날 아프리카가 직면한 다양한 도전 속에서도 여전히 유효한 자산으로 작동하고 있다.

아프리카와 관계 역시 같은 질문 위에 놓여 있다. 과거처럼 필요할 때만 손을 내미는 방식으로는 신뢰를 쌓기 어렵다. 이제는 '한국 대(對) 아프리카'라는 포괄적 구도가 아니라, '한국과 가나'라는 구체적인 국가 대 국가의 관계, 그리고 그 안에서 형성되는 사람 대 사람의 연결이 중요해졌다. 국가 간 협력 역시 결국은 사람의 신뢰 위에서 작동한다. 제도적 합의나 양해각서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실제로 움직이게 하는 힘은 현장에서 쌓이는 관계다.

청년과 기업, 예술가와 연구자, 디아스포라와 지역 공동체 등이 일상의 차원에서 교류하고 이해할 때 협력은 비로소 지속성을 갖는다. 이러한 피플 투 피플(People-to-People) 관계는 단기간에 구체적 성과를 창출하기 어렵다. 하지만 위기 상황에서도 쉽게 무너지지 않는 협력의 기반이 된다. 가나 입장에서 볼 때, 한국과 관계 역시 바로 이 지점에서 다시 설계될 필요가 있다.

이미지 확대 2022년 방한한 존 마하마(오른쪽) 현 가나 대통령과 대화하는 최고조 대사

2022년 방한한 존 마하마(오른쪽) 현 가나 대통령과 대화하는 최고조 대사

[최고조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기후위기는 이러한 전환의 필요성을 더욱 분명하게 보여준다. 아프리카는 전 세계에서 가장 적은 탄소를 배출했지만, 가장 심각한 피해를 겪고 있는 지역 중 하나다. 현장에서 기후 문제는 환경 담론이 아니라 생존의 문제다.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역시 보고서의 언어가 아니라 일상의 선택이다. 이 현실 앞에서 단발성 지원이나 상징적 프로젝트는 충분하지 않다. 함께 고민하고, 함께 설계하며, 함께 책임지는 관계가 요구된다.

필자는 가나에서 성장하면서 아프리카 사회가 관계를 통해 문제를 풀어가는 모습을 가까이에서 보아왔다. 현재 한국에서 주한 가나대사로 근무하며, 가나와 한국이 서로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 일상적으로 체감하고 있다. 이 위치는 필자에게 분명한 책임을 준다. 아프리카를 과장하거나 미화하지도, 단순한 위기 공간으로 축소하지도 말아야 한다는 책임이다. 동시에 아프리카가 지닌 현실과 가능성을 있는 그대로 전달해야 할 책임이기도 하다.

한국과 가나는 서로 다른 길을 걸어왔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서로에게 필요한 것을 가지고 있다. 한국은 짧은 시간 안에 산업화를 이룬 경험과 축적된 기술, 인적 자본을 보유하고 있다. 가나는 젊고 역동적인 인구 구조와 성장하는 시장, 그리고 풍부한 자원과 가능성을 갖고 있다. 한쪽은 경험을, 다른 한쪽은 미래를 가지고 있는 셈이다. 이 만남이 일방적인 이전이나 지원으로 머물 때 관계는 오래가지 못한다. 그러나 서로의 필요를 정확히 이해하고, 함께 설계하는 파트너십으로 나아간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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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연하는 최고조 주한 가나대사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2025년 11월 14일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국가기간뉴스통신사 연합뉴스 주최로 열린 '2025 미래경제포럼'에서 최고조 주한 가나대사가 강연하고 있다.그날 포럼은 '아프리카의 재발견, 함께 도약하는 대한민국'을 주제로 열렸다.

이 지점에서 우분투는 다시 현실적인 의미를 갖는다. '당신이 있어 내가 있다'는 말은 도덕적 구호가 아니라, 협력의 조건이다. 한국의 산업 발전 경험과 기술이 가나의 젊은 시장과 결합하고, 가나의 자원과 잠재력이 한국의 혁신 역량과 만날 때, 그 관계는 제로섬이 아니라 윈윈이 된다.

아프리카를 언제까지 필요할 때만 찾는 대상으로 남겨둘 것인가. 아니면 이제는 함께 가며 서로의 성장을 키워가는 파트너로 받아들일 것인가. 우분투가 던지는 이 질문은 앞으로 한국과 가나가 만들어갈 관계의 방향을 묻고 있다.

※ 외부 필진 기고는 연합뉴스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최고조 대사

현 주한 가나대사, 가나국립대 경영학 학사, 아프리카 최대 통신사 MTN 파트너사 나나텔레콤(Nanatel) 및 핀테크 선도기업 페이스위치(PaySwitch) 설립, 1988년 서울올림픽 개막식 매스게임 '바람개비 소년' 참여,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가나 선수단 부단장, '아트 아프리카 재단'(Art Africa Foundation) 설립.

제보는 카카오톡 okjebo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2026년01월06일 07시00분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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