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2022년 시위와 결정적 차이 '개혁' 아닌 '신정체제' 종식 요구" FP

1 day ago 1

리알화 폭락과 경제 붕괴로 초기부터 광범위하게 참여

SNS 통해 확산·강경 진압·하메네이의 으름장 등 닮은 꼴도 많아

트럼프의 개입 시사·이란의 위상 추락 등 외부 환경도 큰 변화

[테헤란=AP/뉴시스] 지난달 29일 이란 테헤란 도심에서 상인·자영업자 시위대가 행진하고 있다. 이란의 통화 가치가 미 달러당 142만 리알까지 폭락하자 상인과 자영업자들이 이틀째 항의 시위에 나섰다. 목격자들은 경찰의 강제 진압이나 단속은 없었지만, 시위 현장에는 보안이 강화됐다고 말했다. 2026.01.06.

[테헤란=AP/뉴시스] 지난달 29일 이란 테헤란 도심에서 상인·자영업자 시위대가 행진하고 있다. 이란의 통화 가치가 미 달러당 142만 리알까지 폭락하자 상인과 자영업자들이 이틀째 항의 시위에 나섰다. 목격자들은 경찰의 강제 진압이나 단속은 없었지만, 시위 현장에는 보안이 강화됐다고 말했다. 2026.01.06.


[서울=뉴시스] 구자룡 기자 = 이란 리알화 가치 폭락 등 경제난으로 지난달 28일부터 시작된 이란의 반정부 시위는 전국 60여개 도시로 확산되고 있다.

이란 정부는 지난달 31일 31개 주 중 18개 주에서 대학, 관공서 및 상업 시설을 폐쇄하고 이슬람 혁명수비대(IRGC), 바시즈 민병대, 경찰, 군대 등을 동원해 강경 진압에 나서고 있다.

현재까지 최소 35명이 사망한 가운데 최고 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86)는 반정부 시위가 격화하고 시위 진압에 투입된 군이 이탈, 탈영, 명령 불복종 모습을 보일 경우 수도 테헤란을 탈출해 러시아 모스크바로 갈 것이라는 보도도 나왔다.

중동의 강국 이란 사태의 전개는 베네수엘라 못지 않은 새해 세계 질서에 파란을 가져올 태풍의 눈이 될지 초미의 관심이다.  

도덕 경찰 히잡 단속 항의 vs 경제적 붕괴 

외교 전문잡지 포린 폴리시는 5일 이란의 최근 시위는 궁극적으로 신정체제의 교체를 요구하고 있는 점에서 2022년 이른바 ‘히잡 시위’와 결정적으로 차이가 있다며 두 시위의 유사점과 차이점을 심층 분석했다.

지난달 말 테헤란 시장에서 시작된 시위는 다른 주요 도시와 대학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이란에서는 2022년 9월 당시 22살의 마흐사 아미니가 히잡을 제대로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도덕 경찰에게 끌려간 뒤 구금된 상태에서 숨지자 전국적으로 항의 시위가 벌어졌다.

도덕 경찰에 구금된 아미니의 죽음은 여성에 대한 체계적인 억압의 상징이 됐다. 이후 존엄성, 신체적 자율성, 개인의 자유를 중심으로 한 운동이 일어났다.

‘여성, 생명, 자유’라는 슬로건은 강제적인 히잡 착용과 권위주의적 통제에 대한 세대적 저항을 담아냈다.

이번 시위의 직접적인 원인은 경제 붕괴였다. 이란 리알화 화폐 가치는 달러당 140만 리알까지 떨어지고 인플레이션은 52%를 넘어섰으며 생필품 가격은 일반 시민들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치솟았다.

리알화 가치 폭락, 급격한 인플레이션, 만연한 실업은 상점 주인, 상인, 도시 중산층, 그리고 학생들 사이에서 분노를 불러일으켰다.

테헤란의 그랜드 바자르와 랄레흐자르 시장, 알라에딘 시장에서 상인들은 가게 문을 닫고 거리로 나왔다.

SNS 통해 확산·강경 진압 닮은 꼴도 많아

두 시위는 X(옛 트위터)와 인스타그램 같은 SNS를 통해 시위가 빠르게 확산됐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이란 내부의 저항은 이란 전역과 세계로 퍼져 나갔다.

정부가 무력으로 대응한 것도 유사하다. 2022년에는 500명 이상이 사망하고 수천 명이 체포됐다. 이번에도 국가 차원의 살해, 대규모 구금, 협박 등 폭력적인 진압 사례가 보고 되고 있다.

하메네이는 3일 국영 방송을 통해 “시위대와 대화해야 하지만 폭도들과 대화하는 것은 이득이 없다”며 강경 대응 기조를 유지했다.

그는 “통화 가치 하락과 불안정한 환율에 대한 상인들의 항의는 정당하다”면서도 “적에게 선동되거나 고용된 사람들이 상인들 뒤에서 이란 정부에 반대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고 외부에 화살을 돌렸다.

다만 그의 연설이 나온 뒤에도 시민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온 것은 두 경우 비슷했다.

초기 광범한 참여·트럼프의 개입 시사·이란의 위상 추락 등 차이 

차이점은 이번에는 초기부터 더욱 광범위하고 심층적인 양상을 보인다는 점이다.

지리적으로 수도 테헤란을 넘어 이스파한, 마슈하드, 하메단과 같은 주요 도시뿐만 아니라 소도시와 경제적으로 소외된 지역까지 퍼지고 있다.

2022년 9월 시위가 초기 주로 대도시에서 발생한 것과 차이가 있다.

이번 시위는 참여 대상도 학생, 노동자, 여성, 소수 민족까지 참가해 견딜 수 없는 경제 상황 속에서 더욱 폭넓게 참여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국제적인 상황도 차이가 있다.

2022년에도 이란의 인권 침해에 세계적인 관심이 집중됐고 서방 정부들은 제한적인 제재를 가했지만 ‘수사적인 지지’에 그치는 측면이 없지 않았다.

바이든 행정부는 전면적인 경제적 압박과 대립보다는 외교적 봉쇄를 우선시했다.

지난해 6월 대대적인 폭격에 나서기도 했던 트럼프 대통령은 사망자가 늘어날 경우 구출 작전에 나서는 등 직접 개입 의사를 나타냈다.

트럼프는 트루스 소셜에서 이란 시위대를 보호하기 위한 미국의 개입 가능성을 언급했다.

이는 전례 없는 조치로 트럼프의 예측 불가능성과 위험 감수 성향에 대한 이슬람 공화국의 두려움을 더욱 강화할 것으로 포린 폴리시는 전망했다.

불과 3,4년 사이 이란의 지역내 위상도 큰 차이가 있다.

2022년 이란은 중동 전역에 걸쳐 대리 세력과 파트너 네트워크를 유지하고 핵 프로그램 또한 강력한 보호막 역할을 했다.

그러나 헤즈볼라, 하마스 등 대리 세력은 이스라엘과의 전쟁에서 약화됐다. 이란에 중요한 방어벽을 제공했던 시리아의 바샤르 알 아사드도 축출됐다.

지난해 6월에는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핵시설 폭격으로 큰 타격을 입었다.

가장 주목할 변화, 시위 구호 ‘체제 변화’

포린 폴리시는 이번 시위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변화는 시위 구호 자체의 변화라고 강조했다.

‘여성, 생명, 자유’는 여전히 강력한 구호이지만 새로운 구호들은 점차 군주제 지지 성향을 드러내고 있다는 것이다.

“자비드 샤(국왕 만세)”와 “이것이 마지막 전투다. 팔라비는 돌아올 것이다”와 같은 구호들이 시위가 집중된 도시 곳곳에서 울려 퍼졌다.

이러한 구호들은 1979년 혁명으로 물러난 팔라비 왕조의 유산에 대한 새로운 관심과 레자 팔라비 왕세자의 복귀를 공개적으로 요구하는 목소리를 보여준다.

2022년 시위의 주된 특징이었던 공화주의적이고 인권 중심적인 틀에서 크게 벗어난 모습을 나타낸다.

경제적 절망과 정치적 피로감이 결합되면서 사회 일각에서는 질서와 안정에 대한 대안적 비전이 대두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2022년 시위에서 제기된 가치는 여전히 중요하지만 운동의 중심이 사회 개혁보다는 체제 교체로 옮겨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란 정부가 시위대와의 대화를 제안하는 것은 이란의 정치 체제가 개혁될 수 있다고 믿는 순진한 서방 국가들을 속이기 위한 압력 해소 수단일 뿐 공허한 약속에 지나지 않는다고 잡지는 지적했다.

개혁 성향의 마수드 페제시키안 대통령도 해결책을 제시할 수 없는 그의 권한 밖의 문제다.

최고 지도자와 체제 구조 자체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이란 시위대는 이슬람 공화국의 종식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잡지는 이란이 지난해 3월 해임됐던 압돌나세르 헤마티 경제부 장관을 복권시키는 것은 가라앉는 타이타닉호에서 갑판 의자를 재배치하는 것과 같은 피상적인 조치라고 비판했다.

정권의 도덕적 권위 추락에서 경제적 기반 위협으로

두 시위 모두 국가와 사회 사이에 깊고 해결되지 않은 균열이 존재함을 드러낸다.

앞 시위가 정권의 도덕적 권위를 무너뜨린 것이라면 이번에는 정권의 경제적 기반을 위협하고 있다.

이번 시위에서는 ‘자유’와 ‘독재자 죽음’ 등 구호도 등장했다.

이번 시위가 2022년 시위처럼 탄압 속에 사그라질지는 시위대가 경제적 고통을 일관된 정치적 요구로 전환할 수 있는 능력, 그리고 시위가 안보 기관과 이슬람 공화국 정치 엘리트 내부에 균열을 일으킬 수 있는지에 달려 있다.

이란에서는 누적된 분노, 경제적 절망, 그리고 끊임없는 존엄성 추구가 정치 지형을 계속해서 형성하고 있다.

이제 문제는 변화가 가능한지 여부가 아니라 변화가 지속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될 것인가 하는 점이라고 포린 폴리시는 분석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Read Entire Artic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