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돋보기] 텍스트 뗀 AI, 물리법칙 깨우치다…'월드모델'의 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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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단어' 아닌 '다음 장면' 예측…로봇·자율주행 두뇌로 진화

현실과 구분 힘든 '딥페이크' 부작용 우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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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AI 영향 정상회의 전시장

(EPA=연합뉴스)

(서울=연합뉴스) 심재훈 기자 = 손에서 놓친 유리잔은 바닥에 닿는 순간 산산조각이 난다. 인간에겐 배우지 않아도 아는 직관이지만 텍스트 기반 인공지능(AI)에는 수만 개의 문장을 학습해야 겨우 습득되는 정보일 뿐이다.

지금까지 챗GPT 등 거대언어모델(LLM)은 "유리잔은 깨진다"는 문장은 만들 수 있어도, 실제 공간에서 파편이 어떻게 튀고 액체가 쏟아지는지 시뮬레이션하는 데는 한계를 보였다.

올해 AI 기술의 화두가 '월드모델(World Model)'로 급격히 이동한 배경이다.

텍스트로 확률을 계산하던 AI가 이제 물리 법칙과 인과관계를 가상 공간에서 실험하며 '세상의 이치'를 깨우치는 단계로 진화했다.

업계에서는 올해를 월드모델과 피지컬 AI(Physical AI)가 연구실을 벗어나 산업 현장에 투입되는 원년으로 꼽는다.

◇ '다음 단어' 대신 '다음 장면'…AI, 물리엔진 탑재

월드모델의 핵심은 AI가 두뇌 속에 '현실과 똑같은 가상 시뮬레이터'를 갖는 것이다.

기존 LLM이 문맥에 맞는 '다음 단어'를 찾는 데 주력했다면, 월드모델은 물리 법칙에 따라 '다음 장면'에 일어날 일을 예측한다.

오픈AI의 '소라(Sora)'나 구글 딥마인드의 '지니(Genie)'가 쏘아 올린 신호탄은 명확하다. 단순히 텍스트를 영상으로 변환하는 차원을 넘어 중력·마찰·충돌 등 현실의 물리 법칙이 반영된 세계를 구현해낸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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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스로픽 AI

(AFP=연합뉴스)

물론 아직 유체 역학이나 복잡한 동적 상황에서 일부 오류가 발견되기도 한다.

전문가들은 "AI가 정적인 데이터 학습을 넘어 동적인 상호작용을 이해하기 시작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얀 르쿤 메타 수석 부사장도 "현재의 LLM은 텍스트 패턴에는 능하지만 세계의 물리적 인과관계를 이해하는 '상식'이 결여돼 있다"며 차세대 AI의 필수 조건으로 월드모델을 지목한 바 있다.

◇ 로봇의 '정신과 시간의 방'…비용 제로의 무한 학습

산업계가 월드모델에 사활을 거는 진짜 이유는 휴머노이드 로봇, 즉 '피지컬 AI'의 학습 효율성 때문이다.

로봇이 현실에서 걷거나 물건을 집는 법을 배우려면 수많은 시행착오가 필수적이다.

현실에서 로봇이 1만 번 넘어지면 막대한 수리비와 시간이 소모되지만, 월드모델이라는 가상 공간에서는 비용 없이 초당 수천 번의 실패와 재도전이 가능하다. 만화 '드래곤볼' 속 '정신과 시간의 방'처럼 압축된 시간 속에서 학습을 마치고 현실로 나오는 셈이다.

이미지 확대 '피지컬 AI 시대' 용접하는 휴머노이드 로봇

'피지컬 AI 시대' 용접하는 휴머노이드 로봇

(고양=연합뉴스) 임병식 기자 = 5일 경기도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린 2025 로보월드에서 휴머노이드 로봇이 가상 용접 작업을 시연하고 있다. 2025.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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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자율주행 기업 웨이브(Wayve)가 개발한 월드모델 '가이아(GAIA)'가 대표적이다.

실제 주행 영상을 기반으로 가상의 도로 환경을 생성해내는 이 모델은 현실에서 재현하기 힘든 위험천만한 사고 상황을 무한히 생성해 자율주행의 안전성을 검증한다.

월드모델이 소프트웨어(뇌)라면 피지컬 AI는 이를 실행하는 하드웨어(몸)가 되어 시너지를 내는 구조다.

◇ "진짜보다 더 진짜"…규제 논의도 발등의 불

기술이 고도화될수록 가상과 현실의 경계가 무너지는 '회색지대'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월드모델이 생성한 시뮬레이션은 육안으로 실제 영상과 구분하기 어려울 만큼 정교하다. 기존 딥페이크가 얼굴이나 음성 조작에 치중해 배경이나 조명에서 어색함이 드러났다, 월드모델 기반 영상은 거의 완벽한 가짜를 만들어낼 수 있다.

단순한 가짜 뉴스를 넘어 증거 조작이나 사회적 혼란을 야기하는 치명적인 무기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이미지 확대 자율주행AI 모델 알파마요 소개하는 젠슨 황

자율주행AI 모델 알파마요 소개하는 젠슨 황

(라스베이거스=연합뉴스) 김성민 기자 = 젠슨 황 엔비디아 CEO가 5일(현지시간)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 퐁텐블로 호텔에서 열린 엔비디아 CES 2026 라이브에서 자율주행AI 모델 알파마요를 소개하고 있다. 2026.1.6 [공동취재]
ksm7976@yna.co.kr

규제 당국의 움직임도 바빠졌다.

중국은 '딥 합성' 규정을 통해 워터마크 표시를 의무화했고, 유럽연합(EU) 역시 AI법(AI Act)을 통해 생성형 콘텐츠에 대한 명확한 라벨링을 요구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지난달 시행된 AI 기본법에 따라 워터마크가 의무화됐지만 기술적 우회 가능성에 대한 우려는 여전하다.

전문가들은 월드모델의 경우 산업적 활용 가치가 막대하지만 결과물에 대한 식별 기술과 플랫폼 차원의 추적 시스템이 담보되지 않으면 사회적 신뢰 시스템 자체가 위협받을 수 있다고 경고한다.

AI가 텍스트라는 '책'을 덮고 물리 세계라는 '현장'으로 걸어 나오고 있다. 기술의 혁신과 그림자에 대한 대비가 동시에 필요한 시점이다.

president21@yna.co.kr

제보는 카카오톡 okjebo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2026년02월21일 06시33분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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