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집의 재탄생] 작품에 감성을 더해준 낡은 아파트 빈집

1 hour ago 2

부산 수정아파트 빈집에 들어선 수정 갤러리 9년째 운영

지역 사진 작가들에게 기회를…관람객들에게는 이색적인 경험

[※ 편집자 주 = 저출산에 따른 인구 감소와 인구이동으로 전국에 빈집이 늘고 있습니다. 해마다 생겨나는 빈집은 미관을 해치고 안전을 위협할 뿐 아니라 우범 지대로 전락하기도 합니다. 농어촌 지역은 빈집 문제가 심각합니다. 재활용되지 못하는 빈집은 철거될 운명을 맞게 되지만, 일부에서는 도시와 마을 재생 차원에서 활용하는 사례도 늘고 있습니다. 연합뉴스는 매주 한 차례 빈집을 주민 소득원이나 마을 사랑방, 문화 공간 등으로 탈바꿈시킨 사례를 조명하고 빈집 해결을 위한 방안을 모색합니다.]

이미지 확대 부산 산복도로에 너머로 지는 노을이 수정아파트를 비추고 있다.

부산 산복도로에 너머로 지는 노을이 수정아파트를 비추고 있다.

[손형주 기자]

(부산=연합뉴스) 손형주 기자 = 부산의 현대사를 간직한 동구 산복도로에는 지어진 지 50년이 훌쩍 넘은 수정 아파트가 있다.

복도에 들어서자 문이 활짝 열려 있는 공용화장실이 이 아파트의 나이를 말해준다.

저녁이 가까워져 오는 시간인데도 불을 밝힌 가구는 많지 않았다.

39㎡의 단일면적, 1천164세대 규모로 지어진 이 아파트는 고령의 입주민들이 하나둘씩 떠나면서 지금은 절반가량이 빈집으로 남아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빈집이 본격적으로 늘어나던 10년 전, 월세 15만원 수준의 낡은 아파트 속 빈집의 가치를 알아본 사진작가가 있다. 이 아파트와 동갑인 69년생 윤창수씨다.

윤 작가는 20대 청년 시절을 어머니와 함께 수정 아파트에서 보냈다.

20년 후 사진작가로 이곳을 다시 찾은 윤씨는 2012년부터 3년간 수정아파트 속 사람들의 이야기를 카메라에 담았다.

작업이 끝날 무렵인 2015년, 형 명의로 돼 있던 4동 A408호의 세입자가 떠났다.

윤씨는 그 공간에서 자신이 3년간 사진으로 담았던 수정아파트의 모습을 세상에 공개했다.

반응은 나쁘지 않았다. 윤씨는 이곳을 본격적으로 사진갤러리로 운영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수정아파트 4동 A408호는 리모델링을 거쳐 2017년 사진갤러리 '갤러리 수정'으로 재탄생했다.

이미지 확대 갤러리 수정 내부 모습

갤러리 수정 내부 모습

[갤러리 수정 SNS 갈무리. 재판매 및 DB 금지]

윤씨는 "부산에서 사진작가들이 큰돈을 들이지 않고는 자기 작업의 결과물을 발표할 수 있는 공간이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며 "낡은 아파트 빈집을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생각하다 사진 갤러리로 운영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찾아오기 힘든 산복도로 낡은 아파트 빈집에서 열리는 전시를 누가 보러 오겠냐고 말하는 사람도 많았지만, 갤러리는 9년째 쉬지 않고 계속 운영되고 있다.

혹서기에만 잠깐 휴관할 뿐 2주 또는 한 달 간격으로 새로운 전시가 열리고 있다.

특히 수도권과 비교해 사진 갤러리가 턱없이 부족한 부산에서 사진 동호인들에게 입소문을 타면서 관람객들이 꾸준히 찾고 있다.

지역 신예 작가들에게는 자신들의 작품을 전시할 소중한 데뷔무대로 여겨진다.

이미지 확대 수정아파트 복도에 있는 공용화장실

수정아파트 복도에 있는 공용화장실

[손형주 기자]

2024년에는 수정아파트와 나이가 같은 서울 금화아파트를 사진으로 담은 전종대 작가의 개인전이 열리기도 했다.

전씨는 "수정아파트 현관에서 맡은 말로 표현하기 힘든 그 냄새는 나에게 30년 전의 금화 아파트에 대한 기억을 떠오르게 했는데 그 냄새가 전시를 기획한 실마리가 된 것 같다"며 "수정아파트는 금화아파트와 같은 해에 지어졌지만, 아직 건재하다"며 당시 자신의 전시와 수정 갤러리를 소개하기도 했다.

이처럼 오래된 아파트 빈집이라는 전시 공간은 사진 작품 관람하는 관람객들에게 감정의 증폭 장치 역할을 한다.

윤씨는 "관람객들이 평소 잘 알지 못했던 50년이 훌쩍 넘은 낡은 아파트 빈집이라는 공간에 직접 들어오는 것 자체를 살아 있는 박물관에 온 것처럼 좋아한다"며 "평소 접근하기 힘든 아파트 내부라는 공간에 와 볼 기회가 제공된다는 측면에서 갤러리 수정의 존재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처음에 아파트라는 공간을 전시장으로 사용하면서 입주민들이 불편하시지 않을까 걱정을 많이 했고 계속해서 주민과 소통하고 이해를 구하고 있다"며 "빈집으로 넘쳐나는 수정아파트에 젊은 관람객들이 많이 찾으면서 이곳이 조금이라도 활기를 되찾은 것 같다는 주민의 말에 큰 힘을 얻는다"고 말했다.

이미지 확대 부산 수정아파트 4동 A408호에 위치한 수정갤러리

부산 수정아파트 4동 A408호에 위치한 수정갤러리

갤러리 앞에 지금까지 전시된 전시 유인물이 놓여 있다. [손형주 기자]

handbrother@yna.co.kr

제보는 카카오톡 okjebo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2026년02월22일 06시45분 송고

Read Entire Artic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