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레이시아 K팝 공연서 한국인 '관람 에티켓' 도마 위에
"대포 카메라 촬영으로 공연 방해"서 시작한 설전 격화
'#SEAblings'로 反韓 연대…K팝 불매운동에 유관순까지 조롱
발끈한 韓누리꾼들 "원숭이"·"거지" 등 동남아 혐오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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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틱톡 앱 캡처.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이진주 인턴기자 = 지난달 한 K팝 밴드의 말레이시아 공연에서 벌어진 일로 동남아시아와 한국 누리꾼들 간 온라인 전쟁이 벌어졌다.
공연 관람 에티켓을 둘러싼 공방이 상대를 혐오하는 인종차별적 감정싸움으로 격화하며 심각한 양상으로 이어지고 있다.
서로 간 공격이 각종 소셜미디어(SNS)에서 많게는 수만~수십만 회 조회수를 낳는 가운데 동남아 누리꾼들은 연대 의미의 해시태그도 동원하며 K팝·K드라마 불매 운동까지 벌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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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레드 앱 캡처. 재판매 및 DB 금지]
◇ K팝 콘서트 '대포 카메라' 촬영서 시작된 비방전
발단은 지난달 31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열린 K팝 밴드 데이식스 콘서트에서 일어난 '대포 카메라'(대형 망원 렌즈를 단 카메라) 사건이다.
당시 한 한국인 팬이 대포 카메라를 들고 콘서트 현장을 무단으로 촬영하다 관리 요원에게 적발됐다.
이를 두고 말레이시아 누리꾼들이 대형 카메라로 촬영하면서 주변인의 관람을 방해한 것은 무례한 행동이라 비판했고, 이달 3일에는 엑스(X·구 트위터) 이용자 'dd***'가 당시 대포 카메라로 공연을 찍던 한국인의 옆모습 사진을 올려 사태가 커졌다.
동남아 누리꾼들은 "저렇게 큰 카메라는 어떻게 들여온 거죠"(macam mana dia boleh bawak masuk camera sebesar alam ni?), "경비원이 앞줄을 계속 들락거려 집중할 수 없었다"(nak focus pun tak boleh sebab security masuk keluar berapa kali row depan saya ni)(We***) 등 비난을 쏟아냈다.
그러자 자신이 바로 그 한국인이라고 밝힌 엑스 이용자 '_F***'가 "카메라는 공연 주최 측에 반납했고 공연 종료 후 돌려받았다. 이 과정에서 피해를 보신 주변 모든 분들께 다시 한번 사과드린다"며 공개적으로 사과하는 글을 올렸다.
하지만 이번에는 한국 누리꾼들이 반격에 나섰다. 무단으로 촬영한 행위는 잘못했지만 일반인의 사진을 찍어 온라인에 게시하고 조롱하는 행위는 과하고 몰상식하다고 비판한 것이다.
지난 5일부터 엑스에는 "음침하다. 일반인 얼굴을 도촬"(wh***), "현장에서 직접 말하라고. 몰래 사진 찍어서 인터넷에 올리면 그게 사이버 불링밖에 더 돼?"(ch***), "사과까지 했는데 지금까지 이 악물고 안 내리는 게 맞는거임? 무섭다"(fn***) 등 지나치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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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 앱 캡처. 재판매 및 DB 금지]
◇ '#SEAblings'…동남아 형제자매, 반한 연대
공연 에티켓에서 시작된 설전은 상대에 대한 혐오를 토해내는 비방전으로 번졌다.
동남아 누리꾼들은 '#SEAblings'라는 해시태그까지 소환하며 연대를 외쳤다.
'SEA'(Southeast Asia·동남아시아)와 'siblings'(형제자매)가 합쳐 만들어진 '#SEAblings'는 지난해 인도네시아 반정부 시위 때 등장했다. 이 해시태그가 지금은 'Knetz'(한국 누리꾼)에 대한 공격과 방어에 연대한다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동남아 누리꾼들은 성형수술이 발달했다는 한국의 특징을 꼬집어 '성형수술 나라'(plastic surgery country)라고 조롱하거나, 한국 독립운동가를 비하하는 발언까지 서슴지 않는다.
지난 13일 스레드에 한글로 동남아를 비하하는 글이 올라오자 "영어로 말하라. 나는 성형수술 언어를 이해하지 못한다"(please speak english. i dont understanding plastic surgery language)는 조롱 댓글과 함께 8천100여개의 하트가 달렸다.
또 엑스 이용자 'We***'는 유관순 열사 사진을 올리고는 "이건 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자랑거리가 아니다"(this isnt the flex you think it is)라고 썼다.
이에 한국 누리꾼들이 격분했다.
스레드 이용자 'j***'가 "우리나라 독립운동가 얼굴 가지고 조롱을 함"이라 분개하자 3천200여개의 하트가 달렸고, 댓글창에는 "원숭이가 글도 쓰는 세상이야"(jo***), "동남아 비자 발급 금지 운동이라도 해야되나"(yr***) 등 동조의 목소리가 모였다.
또 "인도네시아는 왜 거지처럼 살고 있습니까?"(me***), "동남아 발전을 못하는 이유가 지능이 낮아서"(he***), "이게 동남아 언어야? 진짜 말같지도 않은 언어"(ny***) 등 모욕적인 발언이 횡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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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 앱 캡처. 재판매 및 DB 금지]
◇ "인종차별에 맞서 K팝·K드라마 팬 관둔다"
이처럼 양측 비방전이 심각한 양상으로 치닫자 애초 말레이시아 콘서트 대포 카메라 사태의 당사자라고 밝혔던 엑스 이용자 '_F***'은 지난 24일 'Close'(연예인을 촬영하는 팬 활동을 중단함)라고 게시했고, 이튿날에는 "사이버불링을 멈춰달라"고 적었다.
또 대포 카메라로 공연을 찍던 한국인의 옆모습 사진을 게시했던 말레이시아 엑스 이용자 'dd***'의 계정도 25일 현재 비공개로 전환된 상태다.
하지만 이미 댓글 전쟁으로 번진 이번 사태는 K팝과 K드라마 불매 운동도 낳았다.
지난 22일 스레드 이용자 'si***'는 K팝 CD·포토카드 등을 부수거나 자른 후 잔해들을 비닐봉지에 담고 버리는 영상을 올렸다.
그러면서 "나는 인종차별에 맞서 나의 종교와 국민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 K팝과 K드라마 팬을 그만하기로 했다"(I have decided to stop being a K-pop and K-drama fan because I choose to defend my religion and the dignity of my people against racism)고 적었다.
댓글창에는 "종교는 K팝과 K드라마보다 중요하죠. 축하합니다. 자랑스러워요"(Religion is more important than kpop and kdrama. Congratulations. I'm proud of you), "나는 내 오래된 사인 CD와 상품들을 팔 계획이었다"(I was planning to just sell my old signed CDs and merch") 등의 공감이 이어졌다.
'한국 기업' 불매 운동을 외치는 목소리도 있다.
엑스에는 "LG, 삼성, 현대, 기아 등 모든 한국 제품을 불매해야 한다는 것을 상기시켜 주셔서 감사합니다"(Thanks for reminding to boycott everything Korean including LG, Samsung, Hyundai and Kia), "현대를 시작으로 한국 제품 불매 운동을 합시다"(Lets boycott Korean Products start from Hyundai)(pk***) 등의 글이 수십 개 올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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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카페 캡처. 재판매 및 DB 금지]
이에 동남아 관광을 앞둔 여행객 중에서는 불똥이 튈까 염려하는 경우도 있다.
지난 15일 네이버 이용자 '강***'은 여행 전문 카페에서 "요즘 동남아에서 한국을 조롱하는 글들을 올린다던데 다낭 분위기 괜찮나요? 설마 가족여행 간 눈 앞에서 이런 조롱 당할 일은 없겠죠. 6월에 어머니 모시고 가야되는데 안 좋은 일 없겠죠?"라고 우려를 표했다.
그런가 하면 지난 19일에는 인도네시아인 스레드 이용자 'ad***'가 한국어로 "4월에 한국 가는데 괜찮겠죠?"라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K팝의 영향력이 확대된 상황에서 SNS의 특성으로 갈등이 과열된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는 26일 "결국 반입 금지인 대포 카메라를 들고 공연장에 들어간 것이 원인"이라며 "우리나라도 여러 K팝 공연에서 대포 카메라를 반입 금지 물품으로 지정하고 있음에도 몰래 반입해 촬영한 후 사진들을 파는 행위가 간혹 일어나기도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하지만 지나친 혐오 발언이 오고가는 지금의 상황은 K팝과는 거리가 많이 멀어졌다"며 "K팝이 세계적으로 영향력이 있지만 자만은 경계해야 하며 콘텐츠를 비즈니스적 관점에서 무리하게 접근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성찰이 필요하다"고 짚었다.
임대근 한국외대 디지털콘텐츠학부 교수(한국영화학회장)는 "K팝이 전세계적으로 확산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충돌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며 "특정 지역의 문화가 다른 지역으로 넘어갈 때 언제나 늘 자연스러운 수용만 있는 것은 아니고 현지에서 발생할 수밖에 없는 방어기제도 작동한다"고 분석했다.
이어 "이전에는 전통적 미디어가 여론 형성의 주축이 됐다면 이제는 대중이 SNS 등 플랫폼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의견을 교환하는 시대"라며 "여론 형성의 구조가 완전히 바뀐 상황에 더해 익명 등의 인터넷 특수성을 타고 혐오가 더 심화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윤태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도 "SNS가 익명이기 때문에 더 공격적으로 쓰는 경향도 있고, 결국 자극적인 내용을 쓰는 건 소수인데 이 의견들이 주류인 것처럼 착시현상이 일어나기도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나라 사람들도 백인에게는 그러지 않지만 흑인이나 동남아시아 사람들을 은연중에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며 "인종주의적 행동에 대해 반성하고 문화적 다양성을 존중하는 자세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ju@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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