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자 대한건아', 중장년층의 금메달 찬가
금메달 지상주의, 외환위기 거치며 퇴색돼
메달순위에 집착 여전..."국민의식 변화 반영을"
(서울=연합뉴스) 김재현 선임기자 = "우리들은 대한건아, 늠름하고 용감하다~" 우리 선수가 올림픽 금메달을 따는 순간이면 방송에서 요란하게 흘러나오던 노래가 있었다. 1968년 멕시코시티 올림픽을 앞두고 대중에 알려진 <이기자 대한건아>다. 모윤숙의 동생인 시인 모기윤이 작사, 육군 군악대장 출신 김희조가 작곡한 이 노래는 당대 최고의 바리톤 김부열의 웅장한 목소리를 통해 국민의 심장을 뛰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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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임헌정 기자 = 올림픽 통산 100개 금메달의 주인공.(윗줄 왼쪽부터) 1976 몬트리올 레슬링 양정모, 1984 로스앤젤레스 양궁 서향순의 모습.
그 시절 올림픽은 단순한 스포츠 대회가 아니었다. 국민은 올림픽 메달을 국가 위상과 동일시했다. 국가대표는 국가를 위해 전장에 나가 싸워야 하는 '전사'와 같았다. 국민의 요구는 오로지 금메달이었다. 금메달은 따면 국민 영웅이 되며 돈과 명예가 뒤따랐지만, 기대주가 메달 하나 따지 못하면 '잘 싸웠다'는 격려 대신 '헝그리 정신이 없네' 하는 차가운 시선을 받기도 했다.
1998년 외환위기를 기점으로 집단보다 개인이 우선시되는 풍조가 확산하면서 금메달 지상주의에도 금이 가기 시작했다. 승리의 찬가였던 <이기자 대한건아>가 방송에서 자취를 감춘 것도 이 무렵이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 그 변화가 가장 극적으로 드러났다. 여자 핸드볼팀은 덴마크와의 결승에서 석패했지만, 국민은 금메달보다 더 값지다며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비인기 종목의 설움과 노장들의 투혼이 조명되면서 영화 '우생순(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으로 제작됐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는 스포츠 그 자체를 즐기는 새로운 세대가 전면에 등장했다. 헤드셋으로 음악을 들으며 경기장에 입장하는 수영의 박태환을 보며 국민들은 '정신상태가 해이하다'는 삐딱한 시선 대신 '선진국 청년답다'는 찬사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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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연합뉴스) 평창 동계올림픽 여자 컬링 예선 대한민국과 러시아 전에서 스킵 김은정(왼쪽)이 스톤을 딜리버리 하며 김영미에게 스위핑을 요청하고 있다. 2018.2.21
2026년 밀라노 동계올림픽을 맞아 전파를 타는 한 광고가 눈길을 끈다. "4년 전 올림픽에서 한국이 몇 위를 했는지 기억나는 사람 (있어)? 그런데 '영미'를 외치던 팀킴(컬링)의 이야기는 또렷하게 기억나네"라는 카피가 그것이다.
메달 순위보다 대표선수들의 인생 스토리에 더 관심을 보이는 요즘 팬들의 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국민 모두가 전사가 된 심정으로 "이기자! 빛내자!"를 합창하던 시절엔 상상할 수 없던 풍경이다.
가슴에 태극마크를 단 국가대표 선수는 이제 더는 국가의 명예와 국민의 자존심을 짊어진 '전투병'이 아니다. 대중 역시 자신의 한계에 도전하면서 그 과정을 즐기는 선수들의 모습에 더 관심을 보인다. 참으로 반가운 변화다.
이번 대회도 어김없이 '금메달 X개, 종합 순위 X위'라는 중간집계 결과가 언론 헤드라인을 장식할 것이다. 메달 숫자로 국력을 과시하려는 시대는 이미 지났는데 권위주의 시대를 산 기성세대는 별반 달라진 게 없다.
어른들이 금메달 순위라는 공허한 관성에 머물러 있지만, 청년들은 경기 결과 너머의 과정을 바라보고 있다. 밀라노의 설원과 빙판 위에 메달보다 선수들의 땀방울이 더 빛나길 바란다.
제보는 카카오톡 okjebo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2026년02월09일 07시30분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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