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즈업 필름]일본영화 또 하나의 재능이 '마이 선샤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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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마이 선샤인' 리뷰

[클로즈업 필름]일본영화 또 하나의 재능이 '마이 선샤인'

[서울=뉴시스] 손정빈 기자 = 영화 '마이 선샤인'(1월7일 공개)을 보면 일본 영화계에 또 하나의 재능이 출현했다는 걸 확신하게 된다. 오쿠야마 히로시(奥山大史·30). 2018년 '나는 예수님이 싫다' 이후 두 번째 장편을 내놓은 그는 짐작건대 자신만의 이야기가 있으며 그 이야기를 담아낼 비전을 가졌고 그 비전을 실행할 강단도 갖췄다. 현재 일본영화 선봉에 섰다고 평가 받는 하마구치 류스케나 미야케 쇼의 영화들과는 아직 비교할 수 없겠지만 이들의 뒤를 이어갈 누군가를 찾는다면 아마도 많은 이들이 이제 오쿠야마 감독을 떠올리게 될 것이다. 그만큼 그의 새 영화는 단단하고 섬세하다.

'마이 선샤인'은 첫인상만 보면 관객이 흔히 아는 일본영화 특유의 외양과 감수성을 계승한 것 같지만 오히려 클리셰를 사절하고 새 길을 모색한다. 이 작품은 피겨스케이트를 배우던 소녀 사쿠라와 아이스하키에 흥미를 못 붙인 소년 타쿠야가 코치 아라카와에게 아이스댄스를 함께 배우며 벌어지는 이야기. 오쿠야마 감독은 눈으로 가득한 홋카이도 시골마을이라는 상투적 설정을 가져오면서도 이 배경을 이야기에 복무하게함으로써 이 작품을 그저 예쁘게 담아서 눈이 즐거운 영화가 아니라 정확하게 표현해서 마음이 움직이고야마는 영화로 옮겨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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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쿠라와 타쿠야의 승급 대회 출전이라는 설정으로 도전·극기·환희·좌절이 담긴 뻔한 스포츠성장영화를 향해 일단 전진하던 '마이 선샤인'이 순간 방향을 틀어 이런 스토리 특유의 판타지를 깨부수고 현실을 향해 급강하 한다는 점 역시 신신하다. 전형적 플롯에서 이탈해 예상치 못한 곳에서 멈춰버리는 오쿠야마 감독의 선택은 일견 당혹스럽지만 결국 수긍할 수 있는 충격으로 이어져 러닝타임 90분이 끝난 뒤에도 여진을 남긴다. 이때 이 얘기는 우리가 흔히 즐기던 소년청춘서사에서, 알고는 있으나 외면하고 싶었던 사실을 담은 인간현실서사로 전환한다.

채워넣기보다 비우고 말하기보다 말하지 않는 방식으로 드러내는 화법은 1996년생 감독의 작법이 맞는지 의심 들 정도로 노련하다. '마이 선샤인'엔 그 흔한 내레이션 하나 자막 하나 없고, 등장인물 마음 상태를 설명해주는 정보 하나 없이 최소한의 대사만 있다. 오쿠야마 감독은 세 주인공의 눈빛, 일상을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보여주는 절제된 행동, 그리고 풍경만으로 보여지지 않고 말해지지 않은 것들을 밝힌다. 설명해주지 않기에 관객은 사쿠라의 결정과 타쿠야의 마음과 아라카와의 아픔을 영화가 끝난 뒤에도 마음에 담아두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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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렇게 정색하며 보지 않더라도 '마이 선샤인'은 충분히 직관적으로 즐길 수 있다. 거의 모든 장면을 엽서로 만들 수 있을 정도로 공들여 찍은 그림들. 아무리 봐도 도무지 질리지 않는 영화의 빈티지한 질감. 홋카이도의 눈이 만들어내는 특유의 따뜻한 감성. 빙판 위를 미끄러지며 동작을 맞춰가는 소년소녀의 설레는 호흡. 극 전반을 휘감는 배우 이케마츠 소스케 특유의 고독. 이보다 더 나은 선택은 없을 것만 같은 두 어린 배우의 자연스러운 연기. 그리고 빙상장에 쏟아지던 빛과 한 시절이 담긴 그 호수와 웃음까지.

다만 '마이 선샤인'을 보고 나면 결국 이런 질문이 남는다. 그래서 이건 무슨 얘기란 말인가. 아마도 오쿠야마 감독은 삶의 어느 한 지점에 존재하는 관계의 생사를 내보이려는 것 같다. 어떤 관계는, 어쩌면 대부분의 관계는 느닷없이 시작돼 인생의 한 지점을 지난 뒤 사라져버리는 것인지도 모른다고. 아쉽지 않다고 말하긴 어렵지만 그렇다고 이미 지나간 시절을 억지 노력으로 되돌릴 수 없는 법이라고. 난데 없이 마주한 첫눈, 그렇게 온 세상을 덮어버린 눈, 그렇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 녹아버린 눈처럼 말이다. 계절은 돌고 관계는 그렇게 삶과 죽음을 반복하며 인생을 뒤덮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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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쩐지 외로워보였던 세 사람 사쿠라, 타쿠야, 아라카와는 잠시 함께했다가 다시 각자 일상을 산다. 이때 '마이 선샤인'은 어떤 판단도, 어떤 단정도, 어떤 결론도 내리지 않고 어떤 연민도, 어떤 우려도 없이 그저 지켜보기 만한다. 사쿠라는 아라카와가 혐오스러웠던 걸까 아니면 정말 사쿠라를 질투했던 걸까. 타쿠야는 사쿠라를 좋아했던 걸까 아니면 스케이트를 좋아했던 걸까. 아라카와는 어디로 간 걸까, 그리고 무엇을 하면서 살아갈까. 글쎄, 아무래도 상관 없다. 그저 삶은 계속될 뿐이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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