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의 종언, 전쟁의 교훈…한국에 던진 과제[러우戰 4년⑥]

1 hour ago 2

두진호 한국국가전략연구원 유라시아연구센터장 기고

정치 협상에 의한 종전 가능성…러시아 사실상 승리할 듯

비핵국 한국, 미국의 '확장억제' 안정적으로 이끌어야

두진호 한국국가전략연구원 유라시아연구센터장

두진호 한국국가전략연구원 유라시아연구센터장

[서울=뉴시스]신정원 기자 = 러시아의 침공으로 시작된 우크라이나 전쟁이 어느덧 만 4년째에 접어들었다. 현재 러시아군은 우크라이나 전체 영토의 약 20%(11만 6,000㎢)를 점령하고 있다. 여기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평화 프레임워크’를 공세적으로 추진하면서 러시아의 승리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2022년 2월 24일 오전 5시(현지 시각), 한국 외교부 본부와 긴급 화상회의를 진행하던 주우크라이나 대사관 직원들은 “미사일이다”라는 외마디 비명과 함께 곧바로 공관 소개 작전에 들어갔다. 대사관 관계자는 “러시아가 정말 키이우를 공격할 줄은 몰랐다”고 회고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면 침공과 함께 긴 평화의 시대가 막을 내린 순간이었다.

러시아군은 미국의 외교적 압박이나 종전 협상에도 아랑곳없이 우크라이나에 맹공을 퍼붓고 있다. 특히 원자력발전소와 연결된 핵심 변전소를 집요하게 타격해 원전 발전 계통을 강제 분리하고 광범위한 블랙아웃을 유도하는 등 추위를 무기화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에너지 당국에 따르면 2026년 2월 현재 실제 운용 가능한 전력 인프라는 전쟁 이전의 약 3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이에 맞서 우크라이나군은 장거리 무인공격기를 투입해 러시아 항공우주군과 해군 기지, 에너지 인프라 등을 타격하며 결사 항전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단기 속결전에서 장기 소모전으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2022년 2월 24일 오전 5시 50분(현지 시각) 대국민 담화를 통해 우크라이나에 대한 ‘특별군사작전’을 선언했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의 위협 대응, 우크라이나의 민스크 협정 위반, 자국민 보호 등이 침공의 명분으로 제시됐다. 담화 직후 러시아군은 북부·북동·동부·남부 등 네 개 축선에서 우크라이나를 동시 침공했다. 개전 사흘 만에 러시아군 정예부대가 키이우 북쪽 40km 지점까지 진출하고, 호스토멜 공항을 일시적으로 장악하는 데 성공했다. 러시아 전쟁지도부는 공세적 기동전을 통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정권을 조기에 축출하려는 ‘단기 속결전’을 구상했던 것으로 보인다.

우크라이나군은 2014년 크림반도 강제 병합 이후 러시아군의 전면 침공에 대비해 전략·전술을 발전시켜 왔다. 특히 나토로부터 지원받은 재블린과 NLAW 등의 대전차 미사일과 공격형 무인기 등을 활용해 개전 초기 러시아군을 효과적으로 저지했다. 여기에 국제사회가 신속히 대러 제재에 착수하고, 미국과 유럽 등 민주주의 진영이 조직적으로 군사원조에 나서면서 러시아의 ‘단기 속결전’ 구상은 좌절됐다.

압도적 군사력에도 전장 주도권 확보에 실패하자, 러시아군은 오레쉬니크 등 다탄두 극초음속 미사일을 동원해 우크라이나를 공격했고, 핵무기 사용 가능성을 언급하는 등 ‘플랜 B’로 전환했다. 2024년 6월 푸틴 대통령은 24년 만에 평양을 방문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포괄적 전략 동반자 관계’ 조약을 체결했고, 이를 계기로 북한이 특수작전군과 전투 공병을 러시아에 파병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양측의 인명 피해와 인도적 위기가 심화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당국에 따르면 러시아군 누적 사상자는 최소 110만 명에 이르며, 월평균 인명 손실 규모는 2만~2만 5,000명으로 추정된다. 러시아 국방부는 우크라이나군 인명 피해가 100만 명 이상이라고 주장한다. 유엔은 전쟁 발발 이후 우크라이나 민간인 사망자를 약 1만 5,000명, 부상자를 4만 명 이상으로 추산하고 있다.

러시아군 점령 지역과 민간인 통제 구역을 고려하면 실제 민간인 피해는 공식 통계보다 훨씬 클 것으로 보인다. 우크라이나 전체 인구 약 4,300만 명 가운데 23%가 넘는 국민이 해외나 국내 타 지역으로 피신했으며, 노약자·장애인·영유아 등 취약 계층 1,000만 명 이상이 긴급 인도적 지원에 의존하고 있다. 전쟁은 우크라이나의 생존을 위협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평화 프레임워크'의 불편한 진실과 종전 시나리오

지난해 11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평화 프레임워크'를 제안하면서 종전 협상이 중대 전환점을 맞았다. 미국 종전안의 핵심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서방의 제한적 안전보장을 전제로 현 전선을 동결하고,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을 불허하며, 조속히 대통령 선거를 실시하는 것이다. 전쟁 내내 양측이 치열하게 맞서온 영토 문제와 안전보장 조치, 우크라이나 국내 정치 사안에서 미국은 러시아의 주장에 상당 부분 힘을 실었다. 평화 프레임워크는 트럼프 2기 국가안보전략(NSS)과 국방전략(NDS)에 드러난 불개입 원칙과 세력권 질서 인식이 노골적으로 반영된 사례다.

워싱턴 외교가에서는 "백악관이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도네츠크 포기를 강요하고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이 러시아의 유라시아 세력권을 용인하고, 푸틴 대통령은 서반구에서 미국의 배타적 영향권을 인정하는 세력권 교환 구도다. 사실상 ‘21세기 얄타 회담’이 진행 중인 셈이다. 트럼프 2기 출범 이후 우크라이나에 대한 미국의 군사원조는 동결됐다. 유럽과 나토가 주축이 되어 군사원조와 재정 지원을 이어가고 있으나, 미국 없이는 전쟁 수행 능력 확충이 어려워 젤렌스키 대통령의 선택지가 크게 좁아졌다.

최근 젤렌스키 대통령이 대선과 평화협정 국민투표 동시 실시를 추진하는 것도 상반기 종전을 압박하는 미국의 영향 때문으로 보인다. 러시아가 전장 주도권을 확립한 반면, 우크라이나는 미국의 군사원조 동결로 전쟁 수행 능력 확충에 난항을 겪고 있다. 한편 미 백악관이 오는 7월 건국 250주년을 앞두고 우크라이나 전쟁 종식을 가시적 성과로 내세우려 한다. 이에 따라 형식적 정치 협상에 의한 불안정한 종전, 사실상 러시아의 승리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한국에 던진 과제

북한이 러시아에 특수작전군과 전투 공병을 파병한 이상, 우크라이나 전쟁은 한반도 안보와 직결된다. 1990년대 초 우크라이나가 보유했던 핵탄두는 약 1,900기로 당시 세계 3위 규모였다. 만약 우크라이나가 부다페스트 양해각서 서명을 거부하고 핵보유국 지위를 고수했다면 이런 비극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혹은 독립 이후 나토에 가입했어도 마찬가지다. 한미동맹과 유엔사는 평시 전쟁을 억제하고, 유사시 한반도에 증원 전력을 제공해 전쟁 수행 능력을 보완하는 핵심 안보자산이다.

비핵국 한국이 핵보유국 북한에 대응하려면 미국의 확장 억제(Extended Deterrence)를 안정적으로 견인해야 한다. 동시에 한국형 3축 체계 등 핵·재래식 통합(CNI) 같은 동맹 정책을 발전시켜야 한다. 최근 여당의 DMZ 특별법 추진 과정에서 불거진 유엔사와의 갈등은 진보 정부마다 반복되는 ‘정치적 클리셰’다. 이는 이재명 정부가 표방한 ‘국익 중심의 실용 외교안보’를 스스로 부정하는 것이다. 정치적 접근보다 국방 당국과 유엔사의 합의를 통한 신중한 추진이 필요하다.

대서양 동맹의 약화와 러시아의 위협 상시화 여파로 유럽이 재무장에 나서면서 K-방산이 호황을 맞고 있다. 2021년 K-방산은 약 70억 달러 수출을 기록했고,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한 2022년에는 약 173억 달러 매출을 올렸다. 작년 한 해 수출액은 최소 150억 달러 수준으로 추산된다. 이런 추세가 이어지면 한국이 세계 4위 방산 수출국으로 도약하는 것도 시간문제다.

다만 유럽이 ‘바이 유로피언’ 기조를 강화하면서 K-방산의 시장 진입 장벽이 높아지고 있어, 우크라이나 전쟁 수혜 효과는 제한적일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K-방산 경쟁력 강화를 위해서는 민관군 협력 체계를 방산지원단 같은 상설 기구로 제도화해야 한다. 아울러 수출 대상국과의 절충교역을 고도화하고 시장 다변화도 지속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강력한 자강과 혁신과 동맹 연대의 고도화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남긴 불변의 교훈이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Read Entire Artic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