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놈펜국제예술대 설립하고 캄보디아 첫 교향악단 창단한 이찬해 총장
대학 설립 11년 만에 종합대학 승격
"내가 받은 것을 다음 세대에 전할 뿐…타인을 위한 삶 실천"
[※ 편집자 주 = 오늘날 거세게 불고 있는 한류 열풍 뒤에는 세계 각지에서 길을 닦아온 재외동포들이 있습니다. 낯선 이국땅에서 어려움을 이겨내고 자신만의 영역을 개척해 온 한인들은 한류를 확산시키는 숨은 주역이자 첨병입니다. 연합뉴스는 세계 무대에서 활약하는 한인들의 도전과 성공을 담은 기획 기사를 준비했습니다. 이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통해 한류의 또 다른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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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놈펜국제예술대학교 제공]
(서울=연합뉴스) 박현수 기자 = "가장 가난한 곳에서 제가 가진 재능을 나누는 것, 그것이 남은 인생의 소명입니다. 음악을 배우며 아이들의 눈빛이 달라지는 것을 볼 때 가장 행복해요."
한국 현대음악 작곡계의 거목인 이찬해(80) 프놈펜국제예술대학교(PPUA) 총장은 2일 SNS를 통한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화려한 서울의 삶을 뒤로하고 캄보디아에서 기적을 일궈낸 과정을 담담하게 풀어놨다.
연세대 음대 학장을 거쳐 아시아작곡가연맹(ACL) 사무총장, 한국여성작곡가회 회장, 21세기악회 회장을 두루 역임한 이 총장은 연세대 정년퇴임을 앞두고 2010년 인생의 전환점을 맞았다.
전 재산을 처분해 낯선 땅 캄보디아로 향한 그는, 인도차이나반도 유일의 예술 종합대학을 세우고 캄보디아 최초의 교향악단을 창단했다. 그의 교육 철학이자 학교 교훈인 '나를 위한 삶이 아닌 타인을 위한 삶(Not for me, For others)'은 그가 걸어온 삶 자체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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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놈펜국제예술대학교 제공]
"편안한 노후보다는 여생을 남을 위해 살겠다"고 결심한 그는 조건을 하나 세웠다. 되도록 가난하면서도 영어가 통하고, 음악을 가르치며 살 수 있는 나라를 찾겠다는 것이었다. 그 나라가 바로 캄보디아였다.
"캄보디아는 당시 초·중등 과정에 음악 과목이 아예 없었어요. 그러다 보니 아이들이 도레미파솔라시도 계명조차 몰랐죠. 그런데 그 아이들을 가르치다 보면 오히려 제가 즐겁고, 살아 있음에 감사함을 느껴요." 킬링필드의 상흔이 남아 있는 캄보디아에서 그는 예술이라는 씨앗을 뿌리기 시작했다.
6·25전쟁 당시 한국에 물자를 지원한 참전국인 캄보디아. 한국이 과거 원조받던 나라에서 이제 원조하는 나라로 변모한 역사를 되새기며, 이 총장은 이 땅에 예술 교육이라는 보답을 심기로 했다.
이 총장은 2010년 '엘드림 국제학교'를 시작으로 2013년 2월 대학 건물을 짓고, 그해 10월 첫 신입생을 받으며 프놈펜국제예술대학교(PPUA)를 정식 개교했다. 인도차이나반도에서 유일한 예술 전문대학의 탄생이었다.
초기에는 정부 지원 없이 시작했지만, 대학 설립 과정에서 큰 힘이 된 것은 한국국제협력단(KOICA)이었다. 이 총장은 KOICA의 대학 역량 강화 사업에 신청해 13개국 160개 제안서 중 8대 1의 경쟁을 뚫고 최종 선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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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놈펜국제예술대학교 제공]
"대한민국에 진심으로 감사했습니다." KOICA 지원을 통해 음향·조명 시설과 교수 유치가 가능해졌고, 대학은 빠르게 내실을 갖춰나갔다.
이 대학은 2024년 종합대학으로 승격되며 캄보디아 고등교육의 새 장을 열었다. 현재 음악학부뿐만 아니라 디자인, 건축, 무용, IT, 교육학부까지 갖춘 종합 교육기관으로 성장했다. 특히 건축 및 실내 디자인 학과는 캄보디아의 급격한 도시 개발과 맞물려 큰 인기를 끌고 있다.
2014년에는 캄보디아 초등학교 1·2·3학년 음악 교과서와 전통음악 교과서를 직접 편찬해 교육부와 문화예술부에 증정했다.
이 총장이 캄보디아 전통음악을 직접 채보하고, 한국 작곡가들과 협력해 악보로 제작한 결과물이었다. 매년 음악 콩쿠르도 개최하며 차세대 예술 인재 발굴에도 힘쓰고 있다.
특히 이 총장의 가장 상징적인 성과는 캄보디아 최초의 교향악단 '프놈펜 심포니 오케스트라'(PPSO) 창단이다. 처음 오케스트라를 만들겠다고 했을 때 캄보디아 장관들조차 "캄보디아에서는 불가능하다"며 고개를 저었다.
그러나 이 총장은 포기하지 않았다. 한국에서 20여 명의 연주자인 제자들이 자원해 날아왔고, 현지에 거주하는 외국인 연주자들을 모아 64명의 단원을 꾸렸다. 창단 공연에서 600석 규모의 공연장을 꽉 채운 관객들은 캄보디아 땅에서 처음 울려 퍼지는 교향악에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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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놈펜국제예술대학교 제공]
외국인이 창단한 교향악단에 수도의 이름 '프놈펜'을 붙인 것은 이례적인 일이었다. 캄보디아 문화예술부도 처음에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이 총장이 2013년 개교 이래 보여준 남다른 열정을 인정해 결국 명칭 사용을 승인했다.
현재 오케스트라는 매년 두 차례 정기연주회를 열며 베토벤, 모차르트 등의 클래식 명곡은 물론 캄보디아 민요를 편곡한 곡들도 선보이고 있다.
오는 8월 제7회 정기 연주회에서는 캄보디아 삼앙삼 지휘자가 이 총장의 '소금과 빛이 되어라' 작품을 초연한다. 이 총장은 "갈수록 캄보디아인 중심의 오케스트라로 변모하고 있다"면서 "연주자 60여 명 중 80%가 캄보디아인으로 구성된다"고 전했다.
2020년에는 차세대 연주자 양성을 위한 '프놈펜 심포니 유스 오케스트라'도 창단했다.
최근 15년 동안 캄보디아는 국가경제 발전에 힘입어 예술분야도 크게 성장했다. 그 중심에는 프놈펜국제예술대학교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대학과 함께 이 총장이 설립한 엘드림 국제학교도 눈부신 성장을 이어가고 있다. 처음 5명의 유치원생으로 출발한 이 학교는 현재 유치원부터 초·중·고교까지 통합 교육과정을 운영하며 약 500명의 학생이 재학 중이다.
재학생들은 아시안게임 홍보 아트대회에서 금메달을, 영어웅변대회에서도 금메달을 수상하며, 캄보디아 교육부가 선정하는 '10대 모범학교'로 뽑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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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놈펜국제예술대학교 제공]
졸업생들은 성균관대, 중앙대와 미국, 영국 등 해외 명문 대학으로도 활발히 진학하고 있다. 지난 1월에는 최지호 교장이 말레이시아에서 열린 '세계 학교 서밋 2026'에서 '협력적 리더십 어워드'를 수상하며 국제적 위상을 입증했다. 이 학교 내 음악과 미술 전문 과정인 엘드림 예술 중고등학교는 프놈펜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밑거름이 되고 있다.
폴포트 정권 아래 지식인과 예술가가 숙청되며 문화적 단절을 겪었던 캄보디아에서 그의 제자들은 새로운 연결고리가 되고 있다. 오케스트라 단원과 교사, 디자이너로 활동하며 자국 문화의 현대적 재해석을 이끌고 있다. 일부 졸업생은 국왕이 참석하는 국가 행사에서 연주를 맡으며 국가 의전 음악의 수준을 끌어올렸다.
이 총장은 "이곳 졸업생들은 단순히 기술을 배운 사람들이 아니라, 킬링필드의 아픔을 딛고 예술과 사랑으로 세상을 치유하는 법을 배운 사람들로서 캄보디아의 각계각층으로 스며들고 있다"고 했다.
그는 2015년 캄보디아 국왕으로부터 국가 발전과 예술 교육분야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문화훈장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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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0월에 개최된 제3회 프놈펜 국제학교 베드민턴 대회에서 금메달을 수상한 엘드림 국제학교 배드민턴팀 [프놈펜국제예술대학교 제공]
이 총장은 "언젠가 여기 교수와 교사들이 다 캄보디아 사람들로 채워지고, 그 사람들이 총장과 교장이 돼서 학교를 운영하는 것이 목표"라며 "결국 이 학교의 주인은 캄보디아 사람"이라고 했다.
그는 "아이들이 우리에게 갚을 것은 없다. 나 또한 받은 것을 다음 세대에 전할 뿐"이라며 "캄보디아의 차세대가 예술적 감성을 갖춘 국가의 리더로 성장하는 날까지 남은 인생을 바치겠다"는 뜻을 밝혔다.
phyeonsoo@yna.co.kr
제보는 카카오톡 okjebo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2026년03월03일 07시30분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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