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컬] '기생방→독립운동 성지' 탑골공원의 반전 매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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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 국가 도읍에 대형사찰…'오징어 게임' 촬영지로 관심

일제 강점기 원형 훼손 수난…노인들의 휴식처 역할하기도

권력이 공간 용도 바꿔왔지만 기억은 결국 시민이 쌓아

이미지 확대 유리 보호각 안에서 바라본 원각사지십층석탑

유리 보호각 안에서 바라본 원각사지십층석탑

(서울=연합뉴스) 김성민 기자 =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에서 원각사지십층석탑 유리 보호각 내부 공개관람이 진행되고 있다. 2026.2.20 ksm7976@yna.co.kr

(서울=연합뉴스) 한승호 선임기자 = 도심 공원에 철갑을 두른 듯한 석탑이 서 있다. 석탑을 떠받치는 땅에는 시간의 역사가 담겨 있다. 그 땅이 수백년 도읍지였던 서울, 그 서울의 중심지라면 더 많은 사연을 간직하고 있을 터다. 탑골공원이 그 중 하나다.

서울 종로 한복판에 있는 탑골공원은 1919년 3·1운동 때는 참가자들이 '대한독립 만세'를 외치며 쏟아져 나와 운집했던 곳이다. 공원 내 팔각정에서는 3·1운동의 정신을 담은 '기미독립선언서'가 낭독되기도 했다. 탑골공원이 3·1운동의 성지로 불리는 이유다.

최근에는 넷플릭스 인기 드라마 '오징어 게임'의 촬영지로 해외에도 널리 알려졌다. 한국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들이 경복궁, 광화문 등과 함께 꼭 들러야 하는 핫 플레이스가 되었다. 독립을 외치던 공간은 이제 전 세계 시청자가 열광하는 영상의 배경이 된 셈이다.

이미지 확대 조선시대 불화

조선시대 불화

[연합뉴스DB]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고려시대에 탑골공원 자리에는 흥복사라는 절이 있었고, 조선시대 세조가 흥복사를 원각사로 개명하고 중건했던 곳이다. 세조가 불심이 깊었던 임금이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유교의 나라'를 표방했던 조선시대 도읍 한복판에 대형 사찰이 들어선 것은 이례적인 일이었다.

세조는 1465년 원각사 건립을 명한 뒤 직접 공사 진행 상황을 챙기고 낙성식에서도 참석한 것으로 전해진다. 세종의 둘째 아들인 세조가 조카 단종에게서 왕위를 찬탈한 뒤 정통성을 보강하고 권력 기반을 다지려는 정치적 의도가 있었던 것으로 역사가들은 보고 있다.

탑골공원의 반전 매력은 더 있다. 유교 국가 색채가 점점 짙어지며 불교에 대한 탄압이 가혹해지던 연산군 시절에는 전국에서 기생과 악사를 1천명가량씩 뽑아 연방원이라는 기생방을 원각사에 뒀다. 방탕한 생활을 일삼던 연산군이 폐위된 뒤 왕에 오른 중종은 기생방을 헐고 석탑만 남겼다.

대한제국 시절에는 고종황제가 한성부 판윤(서울시장 격)을 시켜 '한성개조사업'을 하면서 영국인 고문의 도움을 받아 한성부 첫 근대식 공원을 조성했다. 공원의 상징인 탑의 영어 단어를 사용해 '파고다(Pagoda) 공원'으로 이름도 바꿨다. 일제 강점기와 군사정권 시절에는 공원의 원형을 거의 잃다시피했다.

탑골공원에 닥친 갖은 수난 속에서 오롯이 원형을 유지하며 자리를 지킨 것은 대한민국 국보인 원각사지 십층석탑이다. 원각사를 지을 때 건조돼 560년가량 풍상을 겪은 셈이다. 현재 석탑은 산성비나 새의 배설물로 인한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 1999년 설치한 철골 구조의 유리 보호각으로 둘러싸여 있다.

이미지 확대 유리 보호각 속 원각사지십층석탑

유리 보호각 속 원각사지십층석탑

(서울=연합뉴스) 김성민 기자 2026.2.20 ksm7976@yna.co.kr

탑골공원을 관리하는 종로구청은 유리 보호각이 관람객 불편은 물론 통풍 불량과 결로 현상을 일으켜 석탑의 훼손을 가속할 수 있다는 판단 아래 현대적 기술을 적용한 석탑의 새로운 보호방안을 모색 중이다. 이달 4~15일 유리 보호각 안으로 들어가 석탑을 근접 관람할 수 있도록 시민들에게 개방할 예정이다.

직접 찾아가 살펴본 석탑의 탑신에는 불상과 보살상이 살아 숨 쉬는 듯 정교하게 새겨져 있었다. 용, 모란, 연꽃 등의 문양이 함께 어우러져 당대 불교 미술의 정수라고 불리는 것에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여러 번 찾았지만 무심코 지나쳐 놓쳤던 진가를 이제야 발견한 느낌이었다.

이미지 확대 삼일절 앞두고 새단장한 꿈새김판

삼일절 앞두고 새단장한 꿈새김판

(서울=연합뉴스) 최재구 기자 = 107주년 삼일절을 앞둔 27일 '대한독립만세'라는 문구의 꿈새김판이 서울도서관 외벽에 걸려 있다. 2026.2.27 jjaeck9@yna.co.kr

탑골공원은 최근까지도 '노인 천국'으로 불릴 만큼 고령자들의 쉼터 역할을 했다. 지난해 7월 공원 주변에 있던 수 십개의 장기·바둑판이 '정화' 명목으로 철거된 뒤에는 공원을 찾는 노인들이 크게 줄어 지금은 한산해졌다. 공원 인근 무료급식소 운영시간에만 사람들이 몰린다고 한다.

탑골공원은 기도 도량으로, 권력자의 유흥지로, 독립운동의 성지로, 노인들의 휴식처로 끊임없이 시간의 역사를 써내려 가고 있다. 권력은 공간의 용도를 바꿔왔지만, 기억은 결국 시민이 쌓아 올렸다. 3·1운동 현장을 지켜 본 석탑이 천년의 숨결을 이어갈 수 있도록 현대적 보존책도 마련돼야 한다.

hsh@yna.co.kr

제보는 카카오톡 okjebo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2026년03월01일 07시07분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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