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간도 잇는 항일투쟁…두 차례 훈장 뒤 남은 역사적 공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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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1921년 자유시참변 이후 흩어진 독립군 세력은 연해주 일대로 집결해 재정비에 나섰다. 이들은 이만에 고려의용군사의회를 조직하고 사관학교를 설립했으며, 훈련을 거친 청년들은 대한의용군으로 편성됐다. [광주 고려인마을 제공]
(서울=연합뉴스) 박현수 기자 = 연해주 이만 전투와 간도 화룽현 항일투쟁에 모두 이름을 남긴 독립운동가 김낙규 선생의 삶이 재조명되면서, 두 차례 훈장 추서 이후에도 남아 있는 역사적 공백과 후손 찾기 과제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광주 고려인마을은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발행되는 고려신문과 함께 추진 중인 '연해주 고려인 독립유공자 후손 발굴·지원 사업'의 열한 번째 인물로 김낙규 선생(미상~1921)을 선정했다고 24일 밝혔다.
김 선생의 이름 앞에는 두 개의 시간이 겹친다. 하나는 1921년 연해주 이만(현 달네레첸스크) 전투, 또 하나는 1920년 간도 화룽현에서의 항일투쟁이다. 서로 다른 기록이 전하지만, 그 행적은 모두 조국 독립을 향한 길로 이어진다.
김 선생은 1897년경 출생한 것으로 추정되나 출신지와 가계는 확인되지 않았다. 다만 만주와 연해주 일대 독립군 전선에서 활동했다는 기록은 분명하다.
1921년 12월 4일 일본군의 지원을 받은 러시아 백군이 이만을 향해 공세를 시작하자, 대한의용군 제2중대는 도시 방어를 위해 최전선에 배치됐다. 치열한 교전 끝에 제2중대는 단 세 명의 생존자를 제외하고 전원이 전사한 것으로 전해진다. 기록에 따르면 김낙규 선생도 이 전투에서 전사했다. 정부는 그의 공적을 기려 202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또 다른 기록은 1920년 간도로 거슬러 올라간다. 일제가 '간도지방불령선인초토계획'을 수립하고 훈춘사건을 계기로 대규모 병력을 투입하면서 간도 일대는 이른바 '경신참변'의 참화를 겪었다. 옌지, 룽징, 화룽, 훈춘 일대 마을과 교회, 학교가 불타고 주민 다수가 희생됐다.
김 선생은 당시 화룽현에서 의용단 대원으로 활동하며 항일운동을 이어갔으며, 1920년 10월 23일 석루동에서 일본군에 의해 살해됐다는 기록도 남아 있다. 정부는 1991년에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이처럼 그는 서로 다른 전선에서의 공적으로 두 차례 건국훈장을 받았지만, 기록의 차이와 중첩은 아직 충분히 규명되지 않은 역사적 공백을 보여준다.
무엇보다 밝혀지지 않은 것은 정확한 출생지와 후손에 관한 자료다. 이는 수많은 고려인 무명 독립운동가들이 겪은 공통된 한계이기도 하다.
광주 고려인마을은 이번 인물 선정을 계기로 단순한 공적 재조명을 넘어 후손 찾기와 기억 복원 작업에 나설 계획이다.
고려인마을 관계자는 "김낙규 선생의 삶은 간도와 연해주를 잇는 고려인 디아스포라 독립운동사의 상징적 장면"이라며 "후손을 찾는 일은 혈연 확인을 넘어 공동체의 역사적 기억을 회복하는 과정"이라고 전했다.
phyeonsoo@yna.co.kr
제보는 카카오톡 okjebo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2026년02월24일 08시37분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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