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차 세계대전' 촉발한 사라예보 청년 가브릴로 프린치프 소개
이미지 확대
[반크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성도현 기자 = 사이버 외교사절단 반크(단장 박기태)는 16일 을사영웅 인식 전환 캠페인의 일환으로 세르비아 출신 청년 연구원이 자국의 을사영웅을 소개하는 영상 콘텐츠를 공개했다.
반크가 진행하는 글로벌 을사영웅 캠페인은 과거 제국주의에 저항한 각국의 영웅들을 함께 기리고 이를 바탕으로 글로벌 평화 연대를 형성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세르비아의 알파 BK대에서 언어학을 전공하는 밀리차 가브릴로비치 연구원은 영상에서 '제1차 세계대전'을 촉발한 사라예보의 총성으로 유명한 가브릴로 프린치프(1894∼1918)를 소개했다.
세르비아는 1878년 오스만 제국으로부터 독립했으나, 이후 발칸 지역으로 세력을 확장하려던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과 긴장 관계에 놓였다.
1908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합병은 슬라브 민족의 자결을 추구하던 세르비아와 보스니아 세르비아인들의 강한 반발을 불러왔다.
이러한 억압적 상황에 저항해 결성된 민족주의 단체 '젊은 보스니아' 소속 청년 프린치프는 1914년 사라예보에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프란츠 페르디난트 황태자 부부를 암살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세르비아에 선전포고하면서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했다.
다만 오늘날 역사학계에서는 사라예보 사건은 제1차 세계대전의 도화선이 됐지만, 누적된 유럽 전역에 제국 간 갈등과 긴장으로 언제든 전쟁이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이었다고 분석한다.
이미지 확대
[반크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가브릴로비치 연구원은 영상에서 "사라예보 사건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지배에 저항하던 한 청년이 시대적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행동에 나선 계기로 해석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 안중근 의사를 언급하면서 "프린치프와 마찬가지로 제국주의 지배 아래에서 시대적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행동에 나선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폭력을 미화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불의가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는 지점에 이르렀을 때 저항이 어떻게 등장하는지를 조명하기 위한 것"이라며 "역사를 되짚는 일은 억압과 제국주의에 맞서는 노력이 왜 중요한지를 일깨워준다"고 강조했다.
한편 반크는 삼일절을 앞두고 3·1 독립선언서를 세르비아어판과 세르비아어 라틴 문자판으로 번역해 공개했다. 번역은 가브릴로비치 연구원이 담당했다.
raphael@yna.co.kr
제보는 카카오톡 okjebo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2026년02월16일 08시00분 송고









English (U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