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집의 재탄생] 핫플레이스 꿈꾸는 괴산 옛 칠성시장 골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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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고 칙칙했던 곳이 온라인여행사 등 '청년 사장님'들 입주로 활기

입소문에 방문객 늘고 선진지로 부상…"변하는 모습에 가능성 실감"

[※ 편집자 주 = 저출산에 따른 인구 감소와 인구이동으로 전국에 빈집이 늘고 있습니다. 해마다 생겨나는 빈집은 미관을 해치고 안전을 위협할 뿐 아니라 우범 지대로 전락하기도 합니다. 농어촌 지역은 빈집 문제가 심각합니다. 재활용되지 못하는 빈집은 철거될 운명을 맞게 되지만, 일부에서는 도시와 마을 재생 차원에서 활용하는 사례도 늘고 있습니다. 연합뉴스는 매주 한 차례 빈집을 주민 소득원이나 마을 사랑방, 문화 공간 등으로 탈바꿈시킨 사례를 조명하고 빈집 해결을 위한 방안을 모색합니다.]

이미지 확대 청인약방과 로컬즈(오른쪽).

청인약방과 로컬즈(오른쪽).

[로컬즈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괴산=연합뉴스) 박건영 기자 = 충북 괴산군 칠성면 도정리 옛 칠성시장 골목은 과거 꽤 번성했다.

장날이면 상인과 주민, 외지인들이 한데 어우러져 북새통을 이뤘다.

하지만 1990년대 이후 주민들이 도시를 찾아 떠나면서 여느 시골 시장처럼 쇠락의 길을 걸었다.

20여개의 점포는 줄줄이 문을 닫았고, 사람들의 발길이 끊긴 장터는 침체를 거듭하다가 결국 역사의 뒤안길로 모습을 감췄다.

옛 이름만 남은 시장 골목에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한 것은 1년여 전부터다.

괴산군의 청년창업 지원사업의 일환으로 빈 점포에 청년들이 하나둘 터를 잡으면서 활기를 찾기 시작했다.

시장 골목의 변화를 주도한 것은 서울에서 온 김기돈(50)씨였다.

소프트웨어 개발 일을 하던 김씨는 2022년 5월 '로컬 크리에이터'를 꿈꾸며 귀촌을 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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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컬즈 대표 김기돈씨

[촬영 박건영]

여러 지역을 고민하다가 색다른 경험을 하고 싶다는 아내의 권유로 당시에는 생소했던 괴산에 정착했다.

처음엔 개인 홈페이지를 통해 괴산의 숨은 명소와 관광지를 소개하는 온라인 마을여행사를 운영했는데, 기대만큼의 호응을 얻지 못했다.

차별화 전략을 모색하던 중 우연히 방문한 옛 칠성시장 골목에서 희망을 엿봤다.

오랜 시간 방치돼 허름하고 황폐해 있었지만, 골목 곳곳에 옛날 모습 그대로 남겨진 약방과 사진관, 이발소 등이 그의 눈길을 붙잡았다.

김씨는 "시골 마을의 로컬 감성과 레트로한 분위기가 어우러져 서울의 해방촌 같은 핫플레이스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느낌이 들었다"고 회상했다.

마을 주변에 괴산 대표 관광지인 산막이옛길, 쌍곡계곡 등이 있어 마을여행사를 하기에 제격인 곳이라고 생각했다.

때마침 청년창업 지원사업에 선정된 김씨는 폐업한 약방 옆에서 수년째 방치돼 있던 2층짜리 빈집을 리모델링해 2024년 11월 카페 겸 마을여행사 '로컬즈'의 문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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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 골목 입주하는 청년

[로컬즈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로컬즈가 문을 연 이후 시장 골목에는 외지 출신 청년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테라리움 원예공방 '소소리움', 유리공방 '글래스유', 면직물 공방 '아이러브먼데이즈', 폐현수막으로 우산과 양산을 만드는 공방 '선렛', 독립서점 '모래잡이 북스', 예약제 와인바 '뮈제뒤방' 등 1년 만에 9명의 청년이 빈 점포에 둥지를 틀었다.

낡고 칙칙했던 빈 점포들은 파스텔톤 색으로 옷을 갈아입었고, 골목 곳곳에는 개성 있는 간판이 들어섰다.

아무도 찾지 않던 골목에 활기가 돌자 외지 방문객들의 발길이 닿기 시작했다.

젊은 청년들이 한데 모여있는 상권이라는 소문이 확산하면서 이곳을 '옛 칠성시장 골목'이라는 이름 대신 '칠리단길'로 부르는 이들도 생겨났다.

글래스유를 운영하는 이경선(35)씨는 "이제는 칠성면에서 장사한다고 하면 '젊은 청년들이 모인 곳'이라고 인식하는 분들이 많다"며 "이곳에 오고 싶어 하는 청년 사장님들도 꽤 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오히려 인구가 더 많은 읍내에 있을 때보다 보다 사업도 잘되는 것 같다"고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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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리단길 플리마켓

[로컬즈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청년 사장들은 골목 상권을 되살리는 데 그치지 않고, 지역 명소로 재탄생시키기 위해 '칠리단 청년사업자 협동조합'도 꾸렸다.

조합은 매달 마지막 토요일 칠리단길에서 '플리마켓'을 열고 있다.

60여명이 다녀간 지난해 7월 첫 플리마켓 이후 꾸준히 방문객이 늘었고, 지난달에는 400명이 찾아왔다.

오랜 시간 적막감이 가득했던 이 골목은 이제 다른 시골 마을이 부러워하는 선진지로 변모했다.

최근 이 골목의 변화를 살펴보기 위한 괴산지역 다른 마을 주민들과 농촌재생사업 관계자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아직 갈 길은 멀다.

방문객 대부분 외지인이라 평일에는 골목이 한산하고, 저녁이 되면 인적이 끊겨 캄캄해진다.

청년 사장들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고 새롭고 특색 있는 지역 명소로 만들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

김기돈씨는 "이제 막 걸음마를 뗀 단계지만, 골목이 조금씩 변해가는 모습을 보며 가능성을 실감하고 있다"며 "이곳에서만 보고 즐길 수 있는 것들을 모색해 젊은 세대와 관광객들의 발길을 잡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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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산 옛 칠성시장 골목

[로컬즈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pu7@yna.co.kr

제보는 카카오톡 okjebo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2026년01월04일 06시45분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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