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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파이어 엔터테인먼트 리조트 제공. 재판매 금지]
(서울=연합뉴스) 김재현 선임기자 = "헤일 수 없이 수많은 밤을. 내 가슴 도려내는 아픔에 겨워. 얼마나 울었던가, 동백아가씨…." 1964년 발표된 이미자의 '동백아가씨'는 가요 프로그램 35주 연속 1위, 한국 가요사상 최초의 100만 장 판매라는 대기록을 세운 불후의 명곡이다.
18세 때 '열아홉 순정'으로 데뷔한 이미자는 이 곡을 통해 '엘레지의 여왕'으로 등극했지만, 영광의 시간은 짧았다. 발매 1년 만에 일본 엔카를 닮았다는 왜색(倭色) 판정을 받으며 박정희 정부 내내 방송과 음반 판매가 금지된 것이다.
▷ 아이러니하게도 '동백아가씨'는 박정희의 애창곡, 일본 말로 '18번'이었다. 국가기록원 자료를 보면 1979년 5월, 퇴임한 후쿠다 다케오 전 일본 총리의 방한을 기념하는 청와대 영빈관 연회에서 박정희 대통령은 이미자에게 직접 '동백아가씨'를 신청해 따라 부르는 장면이 나온다.
이를 두고 일본 장교 출신인 박정희의 전형적인 '내로남불'이라 비난하는 이가 많지만, 정작 피해자인 이미자는 "동백아가씨가 금지곡인 사실을 박 대통령은 모르고 있더라"고 증언했다. 이미자는 자신을 시기한 라이벌 음반사의 친일 몰이가 당국의 규제로 이어진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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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기록원 자료]
▷ 식민 잔재 청산을 국정 기치로 내건 박정희 시대였기에 일본 연예인들의 방한은 철저히 금지됐다. 전후 일본 가요계를 평정한 재일교포 미야코 하루미(한국명 이춘미)도 통제 대상에 속했다.
이춘미는 1976년 '동백아가씨'와 스토리가 흡사한 '북녘 숙소에서(北の宿から)'로 일본의 국민 가수로 떠올랐지만, "일본 노래를 부른다"는 이유로 고국 공연은 꿈도 꾸지 못했다.
이춘미 내한 공연은 1995년 김영삼 정부 당시 한일친선협회가 주도해 추진됐지만 "여건이 성숙하지 않았다"는 정서상의 이유로 불허됐다. 1998년 출범한 김대중 정부가 일본 대중문화 개방 조치를 내리면서 이춘미의 존재가 국내에 널리 알려지게 됐다.
▷ 전두환 정권이 출범한 1980년, 일본에선 18세의 마츠다 세이코가 '푸른 산호초'의 히트로 아이돌 시대를 열었다. 이듬해엔 남자 아이돌 콘도 마사히코의 '긴기라긴니(번쩍번쩍)'가 큰 인기를 얻으며 한국으로 상륙했다.
두 곡은 롤러장과 디스코클럽에서 늘 트는 '국민 댄스곡'의 반열에 올랐지만, 일본 노래라는 이유로 유통이 금지됐다. 불법 복제 테이프와 음란물의 통로였던 서울 세운상가에는 전국의 클럽 업주들이 두 가수의 음반을 구하러 몰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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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쪽의 숙소'로 국민가수로 뜬 미야코(자료사진)
▷ 마츠다가 지난 주말 인천 영종도에서 첫 내한 공연을 가졌다. 콘서트장을 가득 메운 팬들은 환갑이 넘은 그녀의 '푸른 산호초'를 일본어로 떼창하며 열광의 도가니를 연출했다.
걸그룹 뉴진스가 이 곡을 불러 마츠다가 유명해졌다고 하나, 한국인 관객 대부분이 20·30대였다는 사실이 놀라움을 준다. 마츠다도 놀랐는지 서툰 한국어로 "한국은 정말 멋지다"를 연발하며 감동의 메시지를 전했다.
선진국에서 태어난 MZ세대가 반세기 전 일본의 금지곡을 따라 부르는 장면은 시대의 변화와 세대 차이를 실감케 한다. 박정희의 반일 교육을 받으며 자라 '한일전', '일본문화'라는 단어만 들어도 가슴이 뜨거워지는 중장년층들은 더욱 그럴 것이다.
'동백아가씨'와 '푸른 산호초'의 시절을 되돌아보며 문화는 억누를 수 없고 억눌러서도 안 된다는 평범한 진리를 새삼 느낀다.
jahn@yna.co.kr
제보는 카카오톡 okjebo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2026년02월25일 07시30분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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