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honey] 철새들의 '낙원' 을숙도, 그리고 다대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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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환경·복원·공존의 의미를 읽는 시민 휴식처

이미지 확대 을숙도에서 월동 중인 큰고니 무리[사진/임헌정 기자]

을숙도에서 월동 중인 큰고니 무리[사진/임헌정 기자]

(부산=연합뉴스) 현경숙 기자 = 큰고니, 청둥오리, 고방오리, 홍머리오리, 물닭 ….

을숙도를 찾은 '겨울 나그네'들은 시베리아, 몽골 등에서 수천 ㎞를 날아와 쉬고 있었다.

새봄이면 고향으로 돌아갈 나그네들의 날개 위에 살며시 마음을 실어 보았다.

◇ 빛바래지 않은 동양 최대 철새 도래지

물을 박차고 날아오르는 큰고니들의 군무, 고방오리들이 무리 지어 흩어지면서 연출하는 장관 ….

낙동강이 남해와 만나기 직전 지점, 강 끝자락에 자리한 삼각주 을숙도는 철새들에게 '천국'이었다.

끝없이 이어진 무성한 갈대밭은 그들에게 안전한 보금자리, 은신처가 되어 주었다.

강물과 바닷물이 만나 이루는 기수와 갯벌은 철새들에게 풍부한 먹거리를 제공하고 있었다.

기수 지역과 갯벌에는 각종 플랑크톤, 어류, 조개류, 수서곤충, 저서생물 등이 번식해 철새들에게 좋은 먹이가 된다.

이미지 확대 탐조객들[사진/임헌정 기자]

탐조객들[사진/임헌정 기자]

한반도의 남쪽 끝인 을숙도는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해 새들의 번식, 월동지로 적합하다.

1950년대부터 이어져 온 '동양 최대 철새 도래지'라는 을숙도의 명성은 여전히 그 빛을 잃지 않은 듯 느껴졌다.

환경 오염, 도시 확장, 낙동강 하구 개발 등으로 인한 난관과 고초를 겪으면서도 생태 복원의 노력이 이어졌기 때문으로 여겨진다.

그것이 만족스럽다거나 완전하지 않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새들이 편안한 곳, 나무들이 잘 자라는 장소가 사람에게도 쉼터가 되는 것은 자연스럽다.

'새 많고 물 맑은 섬'이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을숙(乙淑,새 을·맑을 숙)도에는 인근 부산 시민, 멀리 타지에서 찾아온 관광객과 탐방객이 새들과 함께 휴식하고 있었다.

이미지 확대 을숙대교와 억새밭[사진/임헌정 기자]

을숙대교와 억새밭[사진/임헌정 기자]

◇ 시베리아에서 4천㎞를 날아온 큰고니

순백색 털에다 몸집이 크고 기품 있는 큰고니는 을숙도의 겨울 손님 중에서 단연 눈에 띄었다.

몸길이 약 1.5m로, 날개를 폈을 때는 그 길이가 약 2.2m에 이른다.

웬만한 어른이 두 팔을 벌렸을 때보다 길다.

국가유산청 천연기념물센터 자료에 따르면 큰고니는 러시아 예벤키스키를 출발해 내몽고 후룬베이얼을 거쳐 한반도에 도착해 겨울을 난 뒤 다시 돌아간다.

큰고니들이 이동한 거리는 왕복 8천㎞ 이상이었다.

이미지 확대 큰고니들[사진/임헌정기자]

큰고니들[사진/임헌정기자]

큰고니는 고니류 가운데 개체 수가 가장 적어 세계적으로 멸종위기 동물로 분류된다.

동북아에서는 유일하게 한국에서 겨울을 나는 것으로 알려졌다.

세계의 큰고니 개체 수는 2023년 기준 13만여 마리인 것으로 추정된다.

이 중 2천600여 마리가 낙동강 하구에서 관찰됐다.

을숙도를 비롯해 낙동강 하구에는 큰고니를 포함해 매년 평균 160여 종, 16만여 마리의 새가 날아오는 것으로 집계됐다.

적을 때는 9만4천여 마리(2003∼2004년), 많을 때는 21만여 마리(2014∼2015년)가 찾아왔다.

◇ 세계 3대 철새 이동 경로에 속한 한반도

이미지 확대 을숙도 생태 전시관[사진/임헌정 기자]

을숙도 생태 전시관[사진/임헌정 기자]

시베리아·한국·호주로 이어지는 아시아-호주 경로, 유라시아 대륙 횡단 경로, 북아메리카 동부 해안선은 세계의 대표적 철새 이동 경로다.

아시아-호주 경로에 속해 있고, 사계절이 뚜렷한 한국에서는 철 따라 다양한 종류의 철새를 볼 수 있다.

겨울 철새, 여름 철새, 나그네새로 불리는 통과 철새 등이 그들이다.

개개비는 동남아와 8천㎞가량 떨어진 호주에서 날아오는 대표적 여름 철새이다.

개개비는 한국에서 새끼를 낳아 기른 뒤 함께 고향으로 돌아간다.

제비도 4∼7월에 한국에 날아와 번식하고, 가을이면 베트남, 필리핀, 대만 등 남쪽으로 날아가 월동하는 여름새이다.

한반도에서 볼 수 있는 철새는 겨울새 110여 종, 여름새 60여 종, 나그네새 90여 종 등 260여 종으로 알려져 있다.

◇ '낙동강 오리알'의 주인공…흰뺨검둥오리

이미지 확대 중대백로, 흰뺨검둥오리, 왜가리가 노니는 습지[사진/임헌정 기자]

중대백로, 흰뺨검둥오리, 왜가리가 노니는 습지[사진/임헌정 기자]

을숙도에는 햇볕을 풍부하게 받아 싱싱한 녹색을 띠며 튼실하게 자란 곰솔이 많았다.

다 익은 씨가 어디로도 날아가지 못한 채 실편 사이에 박혀 있는 솔방울도 달려 있었다.

소나무는 꽃가루받이 후 2년가량 긴 인고의 시간을 거친 뒤에야 씨가 싹을 틔운다.

후대에 대한 사랑이 번식에 들인 시간에 비례한다면 잉태 시간이 1년 정도인 사람에게 뒤지지 않는 소나무의 자식 사랑이다.

애써 맺은 씨앗이 바람 타고 훨훨 날아가 성공적으로 발아하길 바란다.

광나무, 아왜나무, 후박나무, 사스레피 등 잎이 두껍고 광택으로 반짝이는 난대성 상록 활엽수는 곰솔보다 더 우거져 있었다.

애기동백은 꽃을 피우기 위해 추위와 힘겨운 싸움을 벌이는 듯했다.

수줍게 벌어진 꽃잎이 냉해를 입어 피기도 전에 누렇게 변한 게 애처로웠다.

나무가 자라지 않는 습지는 마른 갈대로 뒤덮여 있었다.

이미지 확대 비상하는 왜가리[사진/임헌정 기자]

비상하는 왜가리[사진/임헌정 기자]

을숙도 북쪽의 후미진 청정 습지는 중대백로, 왜가리, 흰뺨검둥오리 몇 마리가 차지하고 있었다.

흰뺨검둥오리는 '낙동강 오리알'이라는 표현을 만들어낸 주인공이다.

어미가 돌보지 않은 사이, 장마에 그 알들이 낙동강을 떠내려가는 광경에서 나온 관용어가 '낙동강 오리알'이다. 고립된 처지나 외로운 신세를 주로 일컫는다.

◇ '천당'과 '지옥'을 오간 을숙도에서

생태, 환경, 복원, 공존의 의미를 읽는다

을숙도에는 곳곳에 조류와 경관을 감상할 수 있는 전망 시설이 있었다.

낙동강하굿둑 전망대에 서면 남북으로 길게 누운 낙동강이 남해를 향해 흐르는 모습이 유장하다.

강 동쪽에 부산시 사하구 하단동이, 서쪽에 강서구 명지동이 자리 잡고 있다.

강 수면에는 갈매기, 가마우지, 물닭, 오리들이 부지런히 먹이 활동을 하고 있었다.

을숙도에 큰 변화를 가져온 시설물인 낙동강하굿둑 위로 달리는 자동차 행렬은 쉴 새 없다.

낙동강하굿둑은 하단동과 명지동을 잇는 방조제이다.

이 둑이 강 가운데 있는 모래섬인 을숙도를 지난다.

둑의 길이는 약 2.4㎞. 둑 위에는 편도 4차선 도로가 나 있다.

이미지 확대 새들의 휴식[사진/임헌정 기자]

새들의 휴식[사진/임헌정 기자]

과거 갈수기에 낙동강 하구에서 40㎞ 상류 지점인 삼랑진까지 바닷물이 올라가는 일이 잦았다.

이 때문에 낙동강 취수장에서 취수가 중단돼 부산과 서부 경남 지역 용수 공급에 어려움이 발생했다.

바닷물의 역류를 막아 취수 중단 사태를 예방하기 위해 1983년 착공해 1987년까지 5년여의 공사 끝에 건설된 것이 이 둑이다.

둑 남쪽에는 길이 약 5.2㎞의 을숙도대교가 다시 한번 을숙도를 가로지르고 있었다.

이 다리는 부산신항과 기존 부산항 간의 항만 물동량 수송을 위해 2010년 개통됐다.

철새 서식지를 우회하기 위해 다리 모양이 약간 타원형으로 설계돼 있다.

둑, 교량 등 대형 구조물은 건설 당시 생태 훼손 우려로 큰 논란을 낳았다.

을숙도의 수난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을숙도는 1970년대 대규모 분뇨산화지(분뇨처리장)로 활용됐으며 1990년대에는 생활 쓰레기 매립장으로 이용됐다.

지금도 을숙도를 탐방하다 보면 분뇨수송관 매설 표지판과 옛 쓰레기 매립 관련 시설 몇몇을 만나게 된다.

철새들의 천국인 을숙도는 지옥 같은 환경 오염과 생태 파괴를 몇 차례 겪은 셈이다.

작은 섬이 치러야 했던 고난은 겉보기로는 알아채기 어려울 만큼 현재 을숙도는 청정하고 평화로운 철새 도래지, 생태 공원으로 변모했다.

이미지 확대 낙동강 하굿둑[사진/임헌정 기자]

낙동강 하굿둑[사진/임헌정 기자]

을숙도가 지도에 처음 등장한 것은 1916년이다.

남북으로 약 5.5㎞, 동서로 약 2.3㎞인 을숙도가 새들의 번식과 월동 최적지, 동양 제일의 철새 도래지로 유명해지자 당국은 1966년 천연기념물로 지정했다.

이어 을숙도는 1988년 자연환경보전지역이 됐고, 1999과 2009년에는 을숙도를 포함해 사하구 신평, 장림, 다대동 해면과 강서구 명지동 해면이 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됐다.

2005년에는 200만㎡ 규모의 생태복원사업이 을숙도에서 진행됐다.

이미지 확대 고니의 비행[사진/임헌정 기자]

고니의 비행[사진/임헌정 기자]

낙동강하굿둑의 수문은 현재 일부만 개방되고 있으나 그 폭이 확대돼 기수 영역이 더 넓어질 전망이다.

그렇게 되면 낙동강 하구의 생태는 더 풍부해질 것이다.

한때 심하게 훼손됐던 을숙도는 생태와 환경의 복원을 거쳐 지금은 자연과 사람이 공존하는 터로 되살아나고 있다고 해도 틀리지 않을 성싶다.

세계적으로 철새 도래지는 감소하는 추세다.

도시 한가운데 자리한 대규모 철새 도래지는 을숙도 말고 또 있을까 싶다.

세계에서 얼마 남지 않은 철새 도래지 중 하나, 가까이 있어 쉽게 찾을 수 있는 생태의 보고가 각별하지 않을 수 없다.

◇ 390㎞ 낙동강 자전거 종주길 종점 다대포

이미지 확대 다대포 일몰[사진/임헌정 기자]

다대포 일몰[사진/임헌정 기자]

을숙도에서 남쪽으로 약 8㎞ 떨어진 곳이 다대포이다.

다대포는 한국인의 국토 지리 인식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장소이다.

한반도에서 압록강, 두만강 다음으로 길고, 남한에서는 가장 긴 강인 낙동강이 마침내 바다로 들어가는 지점이기 때문이다.

낙동강은 길이가 525.15㎞. 강원도 태백시에서 시작해 경상 남·북도 구석구석을 적시는 영남의 젖줄이다.

영남 문화의 대동맥 구실을 했고, 강을 따라 다양한 산업 지대가 형성돼 한국 근대화와 산업화의 무대라고 불러도 어색하지 않다.

을숙도에서 다대포 가는 길은 다양하다.

걸어서는 2시간쯤 걸린다. 걷는 내내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낙동강과 남해의 물비늘이 연출하는 낭만을 즐길 수 있다.

도보용 길옆으로 자전거 도로가 놓여 있어 라이더들의 사랑을 받는다.

이미지 확대 수심이 얕은 다대포 해변[사진/임헌정 기자]

수심이 얕은 다대포 해변[사진/임헌정 기자]

경북 안동댐에서 시작하는 낙동강 자전거 종주길 약 390㎞의 종착지가 다대포이다.

을숙도와 다대포는 지하철이나 버스로도 쉽게 오갈 수 있다.

다대포에는 해수욕장과 어항이 있다. 해수욕장에는 여름뿐 아니라 사계절 내내 방문객이 이어진다.

일출과 일몰이 장관인 데다 알갱이 고운 모래밭이 반달 모양으로 넓게 펼쳐진 해변이 깨끗하고 아름답기 때문이다.

안개와 구름이 자주 끼는 몰운대는 해돋이와 해넘이를 모두 감상할 수 있는 명소이다.

다대포해수욕장은 수심이 얕고 연평균 수온이 21℃로 따뜻하다. 겨울에도 파도를 밟으며 맨발 걷기를 즐기는 방문객이 적지 않다.

※ 이 기사는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26년 2월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ksh@yna.co.kr

제보는 카카오톡 okjebo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2026년02월04일 08시00분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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