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말저런글] 국제질서의 공위 기간은 끝났나, 공위 기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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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국제 질서는 공위 기간(空位 期間. interregnum)이다. 구질서는 갔는데 신질서는 아직 오지 않은 것이다. 다가올 질서는 아마도 힘의 지배, 세력 분할 정치, 힘의 균형이라는 힘의 세 가지 작용에 따라 움직일 것이다. 규칙이라는 옷을 입었던 '힘'이 이제 맨몸을 드러내고 위력을 과시하는 세계로 가고 있는 것이다."

송민순 전 외교통상부 장관이 책 『좋은 담장 좋은 이웃』에 쓴 낱말들을 보자. 공위 기간이라? 사람이 앉지 않아 비어 있는 자리, 결원으로 비어 있는 직위가 공위에 대한 사전의 정의다. 그러나 그 뜻이라면 궐위(闕位)가 있다. 기간까지 함께하는 <공위 기간>은 원래 로마법에서 왕이 죽었으나 아직 새 왕이 즉위하지 않은 최고 권력 공백 상태, 즉 정권 이행기·과도기·공백기·혼돈기·교착기를 뜻한다. 영국의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은 21세기 현대 사회를 이 용어로 지칭했고 마르크스주의 사상가 안토니오 그람시는 기존의 사회 질서나 헤게모니가 무너지고 있지만 새로운 질서나 헤게모니는 아직 확립되지 않은 과도기적 혼란기라는 취지로 이 용어를 사용했다. 이른바 말뜻의 확장이다.

이미지 확대 트럼프 미 대통령이 공개한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

트럼프 미 대통령이 공개한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

(워싱턴=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3일(현지시간) 미군이 기습적인 군사 작전으로 체포한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의 근황 사진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트루스소셜에 공개했다. 2026.1.4 [트럼프 트루스소셜 계정. 재판매 및 DB 금지] photo@yna.co.kr

저자는 신질서가 아직 안 왔다고 했지만 미국의 베네수엘라 침공은 노골화하는 신질서의 기원 아니냐는 시각이 있다. 도널드 트럼프 레그럼(통치)의 미국은 규칙이라는 옷이 거추장스럽기만 하다. 훌훌 벗어던지고 다른 나라를 무력으로 침공하여 대통령을 잡아들이기까지 한다. 이런 <힘의 지배>에서 유엔 체제는 갈수록 꼴이 우스워질 수밖에 없다. <세력 분할 정치>는 세력권 정치(Sphere of Influence)다. 미국은 미주 대륙과 태평양을, 중국은 동아시아를, 유럽연합(EU)은 서유럽을, 러시아는 동유럽과 중앙아시아를 각각의 세력권으로 두는 질서다. <힘의 균형>은 미국과 중국의 경쟁을 보는 틀이자 국가 간 일반적인 세력균형(Balance of Power. BOP) 원리로 볼 만한 말이다. BOP는 국제정치학의 ABC다.

저 위 문장에 쓰인 신질서를 '다가올' 질서가 아니라 '(이미) 다가온' 질서로 고쳐 읽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그 질서가 힘의 지배, 세력 분할 정치, 힘의 균형으로 움직일 거라는 진단은 틀림없지 않나. 그런데도 '아마도'를 수식어로 넣은 것을 보면 저자는 숙고한 언어에 익숙한 전직 외교관임이 틀림없다. 풍부한 사례(史實)를 국제정치 이론에 녹이고 자신의 외교정책 경험과 통찰을 융합한 책의 두 가지 기록을 더 보자. 역사상 스스로 핵무기를 개발한 국가 중 핵을 포기한 사례는 1990년 남아공뿐이라는 것이 하나요, 중국의 서태평양 세력권과 트럼프(미국)의 서반구 세력권이 가장 민감하게 충돌하는 곳이 대만해협과 한반도라는 것이 다른 하나다. 찬물을 뒤집어쓴 듯 정신이 번쩍 든다. 한반도 비핵화가 현실적 목표일 수 있을까? 대만 문제의 불안이 지속하는 가운데 한반도는 이대로 안전할까? (서울=연합뉴스, 고형규 기자, uni@yna.co.kr)

이미지 확대 마두로 체포 위한 '확고한 결의' 작전 지켜보는 트럼프

마두로 체포 위한 '확고한 결의' 작전 지켜보는 트럼프

(워싱턴=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3일(현지시간)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을 체포하기 위한 '확고한 결의' 작전 진행 상황을 참모들과 함께 지켜보고 있다. 2026.1.4 [트럼프 트루스소셜 계정. 재판매 및 DB 금지] photo@yna.co.kr

※ 이 글은 다음의 자료를 참고하여 작성했습니다.

1. 송민순, 『좋은 담장 좋은 이웃』, 생각의창, 2025, p. 13. pp. 16-17. p. 21 인용

2. 경향신문 창간 70주년 기획 김호기의 세상을 뒤흔든 사상 70년 (14) 안토니오 그람시 '옥중 수고'…실패한 혁명가, 사상가로 승리하다 (입력 2016.06.21 20:48 수정 2016.06.21 21:46) - https://www.khan.co.kr/article/201606212048005

3. 표준국어대사전

제보는 카카오톡 okjebo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2026년01월07일 05시55분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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