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아웃] 21세기 총독 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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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확대 마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왼쪽)-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마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왼쪽)-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US President Donald Trump looks on as US Secretary of State Marco Rubio speaks about the US Navy?s new Golden Fleet initiative, unveiling a new class of warships, at Mar-a-Lago in Palm Beach, Florida, on December 22, 2025. (Photo by ANDREW CABALLERO-REYNOLDS / AFP)

(서울=연합뉴스) 김종우 선임기자 = 총독(總督·viceroy)은 왕을 대신해 식민지나 해외 자치령을 다스리던 제국의 대리인이다. 주권은 본국에 있고, 통치는 총독이 맡는다. 이 직함은 20세기 들어 역사의 유물이 됐다. 1947년 인도 독립을 관리했던 루이 마운트배튼은 영국제국의 마지막 총독으로 기억된다. 1997년 홍콩 반환과 함께 총독은 현실 정치의 무대에서 퇴장했다. 탈(脫)식민시대에 '총독'은 금기어다. 주권과 자결을 부정하는 용어이기 때문이다.

최근 미국 일간지 워싱턴포스트(WP)가 이 사라진 단어를 소환했다. 4일자(현지시간) 기사에서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을 '베네수엘라 총독'이라고 지칭했다.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이 3일 새벽 체포돼 미국으로 이송된 뒤 인구 2천900만 명에 달하는 베네수엘라를 사실상 '운영'하고, 석유 자산을 '배분'하며, 새로운 정부 수립을 '관리'하는 역할을 루비오가 맡게 됐다는 맥락이다. 그를 외교적 협상의 주체라기보다 주권 국가의 과도기를 관리·조율하는 대리 통치자에 가깝게 규정한 표현으로 해석된다.

국가안보보좌관·국제개발처(USAID) 처장·국립문서기록관리청 청장 대행까지 겸임한 루비오는 외교의 범위를 넘어 행정과 통치의 중심에 서 있다. 마두로 축출 과정에서 핵심 역할을 했고, 권력공백 상태에 놓인 베네수엘라를 관리하는 임무까지 떠안았다. 루비오는 10년 넘게 마두로 정권 교체를 공개적으로 주장해왔다. 쿠바 출신 부모를 둔 망명 2세로서 중남미 사회주의 정권에 대한 문제의식을 정치적 사명처럼 품어왔고, 스페인어에 능통해 중남미 정상들과 야권 인사들과도 긴밀하다. 그에겐 차기 대권에 대한 야망도 있다.

이와 관련해 WP의 외교·안보 칼럼니스트 맥스 부트는 '트럼프의 베네수엘라 운영 계획은 무엇인가?'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핵심을 짚었다. 그는 마두로 체포 작전을 정권 교체가 아닌 정권 축출로 규정했다. 작전은 성공했지만, 이후 상황에 대한 청사진은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어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은 이라크에서 민주주의를,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리비아에서 인권을 각각 내세웠지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달랐다고 했다. 부트의 해석에 따르면 트럼프에게 베네수엘라가 중요한 이유는 세계 최대 규모의 석유 매장량이다.

그렇다면 마두로 이후 베네수엘라는 어디로 갈 것인가. 트럼프는 미국이 베네수엘라를 '운영'하겠다고 말했지만, 운영과 지배는 차원이 다른 문제다. 역사적으로 독재자를 제거하는 작전은 대부분 성공했지만, 이후 사회를 안정시키는 과업은 거의 실패했다. 이번 트럼프의 결단에 대한 최종 평가는 향후 베네수엘라의 운명에 달려있다. 미국이 그 운명을 좌우할 수 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총독이란 단어가 재소환된 이유도 결국 그 불확실성 때문일 것이다.

제보는 카카오톡 okjebo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2026년01월06일 14시30분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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