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전기·난방 '펑펑'…종전협상 난항속 모스크바 겨울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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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마다 조명, 실내는 따뜻한 난방…혹독한 겨울 우크라와 대비

모스크바 아닌 지방은 군사 상황 체감 "주기적으로 사이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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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짝이는 모스크바 거리

(모스크바=연합뉴스) 최인영 특파원 = 18일(현지시간) 러시아 수도 모스크바의 아르바트 거리 곳곳에 화려한 조명과 귤로 장식된 나무들이 세워져 있다. 2026.2.21 abbie@yna.co.kr

(모스크바=연합뉴스) 최인영 특파원 = 18일(현지시간) 러시아 모스크바 아르바트 거리는 '귤'을 주제로 아기자기하게 꾸며져 있었다. 모형 귤이 매달린 크리스마스트리들이 차 없는 거리에 끝도 없이 이어졌다. 대형 귤 모양의 팝업 스토어들도 곳곳에 설치됐다.

크리스마스 시즌이 끝나고 봄을 맞이하는 러시아 전통 축제 '마슬레니차' 주간이 진행되는 시기지만 아직 추운 날씨 때문인지 모스크바는 여전히 겨울 장식들로 반짝이고 있다. 저녁이 되자 조명이 켜지면서 아르바트 거리는 더욱 휘황찬란해졌다. 귤의 주황색이 부각되면서 추위 속에서도 따뜻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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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로등을 꾸민 조명

(모스크바=연합뉴스) 최인영 특파원 = 18일(현지시간) 러시아 수도 모스크바의 트베르스카야 거리가 화려한 조명으로 장식돼 있다. 가로등도 작은 조명들로 꾸며졌다. 2026.2.21 abbie@yna.co.kr

모스크바의 중심 대로인 트베르스카야도 마찬가지였다. 곳곳에 설치된 대형 트리와 2026년 새해를 기념하는 조형물들이 화려한 조명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심지어 거리를 밝혀주기 위해 설치된 가로등들도 작은 전구들이 이어진 장식 조명으로 꾸며졌다. 길가의 화분들에는 추위에 약한 나무 대신 장식용 나뭇가지와 조명들이 꽂혀 있었다. 모스크바의 겨울은 혹독한 추위로 유명하지만, 사람들은 웃음을 머금은 얼굴로 아름답게 장식된 거리의 모습을 휴대전화 카메라에 담았다.

모스크바의 상징 붉은광장은 크리스마스 마켓과 스케이트장으로 변신했다. 이곳 역시 화려한 조명으로 축제 분위기를 냈다. 크렘린궁 앞의 마네시 광장 쪽은 붉은 조명으로 가득했다. 러시아와 중국의 밀착 관계를 과시하듯 음력설을 '중국설'이라고 소개하며 중국풍 장식으로 거리를 한껏 꾸민 것이다. 2026년 병오년(丙午年) '붉은 말의 해'를 기념하는 붉은 말 조형물도 눈길을 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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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력설 기념하는 모스크바

(모스크바=연합뉴스) 최인영 특파원 = 18일(현지시간) 러시아 수도 모스크바의 붉은광장 인근에 음력설을 '중국설'이라고 소개하며 설치된 화려한 붉은 장식. 2026.2.21 abbie@yna.co.kr

건물 안으로 들어가도 훈훈한 분위기는 이어진다. 러시아에서는 겨울에 실내에서 두꺼운 외투를 옷 보관실에 맡기는 것이 일반적이다. 병원, 쇼핑몰, 박물관, 식당 안에서는 보통 티셔츠 등 가벼운 옷만 입고 있어도 춥지 않다. 오히려 너무 두꺼운 스웨터나 내복을 껴입고 있으면 더워서 땀을 뻘뻘 흘리게 되기도 한다.

공공장소에서 전기와 난방을 아낌 없이 트는 모습에서 러시아의 '에너지 부국'이 느껴지기도 한다. 러시아가 2022년 2월 24일부터 4년째 벌이고 있는 우크라이나 '특별군사작전' 관련 분위기는 모스크바에서는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거리에는 여전히 군인 모집 광고나 전장에서 공을 세운 군인의 사진 등이 크게 걸려 있지만 이는 어느새 모스크바 시민들에게 익숙한 일상의 풍경으로 자리 잡았다.

이런 모습은 우크라이나가 올겨울 에너지 위기를 겪은 것과 대조적이다. 외신들은 수도 키이우를 비롯한 우크라이나 여러 지역에서 대규모 정전이 발생해 시민들이 전기와 난방 공급 없이 혹독한 추위를 견뎌야 했다고 보도했다. 크리스마스와 신년도 축제 분위기 없이 차분하게 지나간 것으로 전해진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지난달 에너지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러시아는 군사 목표물만 공격한다고 말하지만 우크라이나는 러시아가 에너지 시설을 집중적으로 공습한 결과 시민들이 고통받고 있다고 비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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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광장의 크리스마스 마켓

(모스크바=연합뉴스) 최인영 특파원 = 18일(현지시간) 러시아 수도 모스크바의 붉은광장에 크리스마스 마켓이 열린 모습. 2026.2.21 abbie@yna.co.kr

러시아에서도 유독 모스크바가 '딴 세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당연히 전장 상황은 참혹하다. 발레리 게라시모프 러시아군 총참모장은 지난 15일 전선의 군부대를 방문해 러시아군이 "혹독한 겨울 환경"에서도 성과를 냈다고 말했다.

모스크바의 한 레스토랑에서 종업원으로 일하는 니키타 씨는 "모스크바에서는 4년째 전쟁(러시아에서는 '특별군사작전'으로 칭함)이 진행 중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며 "경제 상황 및 각종 제재와 대조적"이라고 말했다.

모스크바 시민은 경제적으로 우크라이나 특별군사작전 여파를 느끼는 경우가 많다. 막대한 군사 지출 확대 영향으로 물가가 치솟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러시아의 패스트푸드점 '프쿠스나 이 토치카'의 대표적인 햄버거 '빅히트' 가격은 2023년 8월 175루블(약 3천300원)이었으나 2년 6개월이 지난 지금은 221루블(약 4천200원)이다. 프쿠스나 이 토치카는 맥도날드가 우크라이나 특별군사작전 이후 러시아 시장을 떠난 자리에 들어선 러시아 브랜드고, 빅히트는 맥도날드의 '빅맥'에 해당하는 햄버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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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크바의 겨울 장식

(모스크바=연합뉴스) 최인영 특파원 = 18일(현지시간) 러시아 수도 모스크바가 크리스마스트리와 화려한 조명으로 장식돼 있다. 2026.2.21 abbie@yna.co.kr

러시아 남서부 리페츠크주 출신인 니키타 씨는 "전장과 가까운 다른 도시들에서는 사정이 다르다"며 "매일은 아니더라도 이틀에 한 번씩은 공습경보 사이렌이 울리고 저녁과 밤에 주기적으로 휴대전화 통신이 차단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시간이 지나면 이런 상황에도 익숙해지고 다양한 해결책을 찾게 되지만 이런 일들로 세상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상기하게 된다"고 밝혔다.

그는 "종전 협상이 어떤 결과로 끝날지는 말하기 어렵지만 모든 제한이 해제되고 지속적인 드론 공습도 멈춰서 사람들이 긴장과 불안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좋겠다"고 희망했다.

abbie@yna.co.kr

제보는 카카오톡 okjebo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2026년02월21일 07시34분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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